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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Nov 01. 2020

[여유]

  나는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생 때 사회심리학을 복수 전공하려고 심리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 그중 성격심리학을 수강하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생후 1-2일 된 신생아들도 성격이 다 달라서 머리를 감을 때 어떤 아기는 울면서 자신의 불 폄 함과 놀람을 표현하고 어떤 아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기질에 관한 이야기이다. 태어난 지 이제 하루가 지났기 때문에 어떠한 교육도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받을 겨를도 없던 아기들이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 실험의 핵심이다.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주장에 근거가 되는 이 실험에 나는 완전히 설득되었다.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기질’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혹 어떤 사건이나 계기로 인해 180도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원래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었으나 학습과 사회화를 통해 숨겨져 있던 모습이 뒤늦게 발현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성격이 변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무수하고 그 반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장도 다양하다.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그래서 승자가 없는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깝게 지냈던 한결같은 친구들이 점점 변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나의 신념으로부터 어긋나고 싶지 않아 늙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너도 나이 드나 보다 한다. 


  김성준한테서 그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 어제 일 끝나고 저녁에 간맥 한 잔 하러 만났다. 생전 처음 헬스를 시작해서 몸 키우기에 재미를 붙인 김성준은 역시나 보자마자 팔뚝 자랑을 했다. 몸도 얼굴도 활기가 부쩍 늘었다. 타고났는지 조금만 운동해도 남들보다 근육이 더 잘 생긴다. 몸만들기도 하고, 하고 있는 사업도 잘 되고 있음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니까 즐거운가보다. 나까지 덩달아 좋다. 친구가 느끼는 안정감과 만족감. 그런 것들이 사람을 더 안정적이게 만든다는 걸 김성준을 보면서 느낀다. 맥주 한잔 짠하고 자기 요즘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나한테 ‘너는 요즘 어때? 너도 요새 행복해?’ 묻는다.  살다 살다 너한테 그런 질문을 다 듣는다 하고 웃었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서로의 근황을 잘 알고 있는 이 친구가 나의 요즘을 물었다. ‘행복’하냐니 언제부터 이 녀석이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 싶었다. ‘내가 행복하고 살만해지니까 좋은 게 남들이 어떤지 돌아보게 되는 거더라’라고 여유가 주는 혜택에 물씬 젖어 얘기하는 친구의 모습에 기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해 다 그런 거 아니겠냐고 대꾸했다. 사람은 이기적이니까 내가 당장 힘들고 정신없으면 나 밖에 안 보이다가 여유가 생겨야만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생기는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주변에 ‘무’ 관심하던 친구였는데 남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건 정말 큰 ‘변화’이다. 여유라는 게 이렇게 큰 힘이 있는 거구나 체감했다. 


  지금에 만족해서 나온 마음의 여유는 남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그 관심을 통해서 관계가 이전보다 돈돈해질 수도 있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책에 의거한 발전 종용이 아닌 만족에 의거한 발전 욕구를 이끌어낸다. 자신감이 생겼을 때 여유가 생기는데 여유가 생긴 걸 보고 자신감이 붙었나 보다 한다. 지금의 행복을 일궈냈다는 자신감을 발판 삼아 더 나은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여유가 사람을 부드럽게 한다고도 느낀다. 나에 대한 만족, 현재의 행복에서 나오는 ‘여유’가 내게는 언제쯤 올까? 오긴 하려나. ‘현재에 만족하자 나는 행복해’라고 스스로를 속이듯 거는 최면이나 긍정적인 구호는 싫다. 목표를 달성하고 꿈꿔오던 일상을 문제없이 사는 데서 맛볼 수 있는 진짜 여유가 좋다. 여유야 어디쯤 오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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