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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Sep 11. 2020

서로를 응원하는 사람

다정한 일기 by 은결

혜진님:)

여기는 또 비가 내리네요. 이젠 비는 그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생기는 하루 중 유일한 내 시간을 비를 뚫고 가서 사 온 커피 한잔과 함께 책상에서 맞이합니다.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군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반이 1반밖에 없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초등학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았죠. 어쩜 저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듯, 새로운 친구를 기다렸는지 모르겠어요. 늘 새로움이 부족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런데 4학년 때 한 여자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통통하게 귀욤상을 가진 친구였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너도 나도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죠.


그 친구네 집은 식당을 했는데 도시락 반찬들이 다 너무 맛있는 거예요. 내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나 나물, 좀 메뉴가 좋은 날은 쥐포 볶음 정도가 다였는데, 그 친구는 맛살에 계란을 입힌 반찬 같은걸 매일 싸오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죠. 그 친구 하면,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게 도시락 반찬이나, 저는 그 친구를 매우 애틋하게 아꼈답니다. 시골이라 집이 버스를 타고 조금씩 가야 할 정도로 떨어져 있었는데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던 기억이 나요. 4, 5학년이었는데도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요. 다만 그 친구 방에 누워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네요.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면서 지금 살고 있는 이 곳, 창원( 그 당시엔 마산)으로 이사를 왔어요. 6학년이 17반이나 있는 거대한 학교였죠.( 17반이나 있는데 또 1반으로 배정되어 초등학교를 올 1반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안았지만요. ^^;;)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나를 지배한(?) 한 친구를 만나게 돼요. 얼굴도 똑 부러지게 생겼고, 생각도 똑 부러지는, 정말 말 그대로 똑 부러지는 친구였죠. 처음으로 등교했던 날 짝지가 되었는데 그 친구가 짝지 짝지 하며 나를 엄청 챙겼어요.


처음으로 사람이 많은 도시(서울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큰 도시였죠.)로 전학 와 어안이 벙벙한 나를 그 친구는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딱 부러지게 나를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그 친구의 소유물이 되었죠. (이렇게 표현하는걸 그 친구가 읽으면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 그랬어요. 갑갑했죠.)


한 사람에게 소유된다는 것. 그건 편하고도 답답하고, 새로운 관계를 더 갈망하게 되는 그런 어떤 것이에요. 그때부터 나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곳으로 접어들었는지도 몰라요. 그 친구와는 단짝으로 불렸고, 나는 다른 친구와 사귈 때도 그 친구의 눈치를 봐야겠죠.


그 친구와 여러 가지를 많이 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하지 못했어요. 그 친구와의 관계는 동등한 관심과, 동등한 요구와 동등한 그 무언가 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거든요. 그 친구는 항상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제안했고 나는 들어주는 식이었죠. 그 친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두려웠거든요. 나는 단짝이 있고, 그래서 안전한 것들을 누린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죠. 대학교를 다른 곳으로 간 우리는(어떻게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갔어요. 그렇게 보면 대단한 인연이었죠.) 그때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땐 몰랐죠. 그냥 좀 갑갑하긴 해도, 나의 가장 오랜 친구고 가장 친한 친구는 그 친구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느 날 마산에 와서,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 친구에게 연락했는데 '네가 어쩐 일이냐며' 나에게 쏘아붙이듯 전화를 받았어요. 깜짝 놀랐죠. 어 갑자기 왜 그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전화는 끊었고 그 전화 이후 우린 더 멀어졌어요.


그 친구는 내 결혼식에도 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안 해요. 아마 그 친구가 보내준 사랑과 관심만큼 내가 응하지 못 고, 그래서 그 친구는 그 친구 나름대로 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쌓아왔을 거예요. 나는 나와 잘 맞지 않는 친구와 나를 맞추느라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을 거고요. 나도 그 친구를 좋아했지만, 좋아함의 크기가 비슷해야 관계가 오래 유지된다는 걸 그 친구를 통해 깨달았죠.


사람 사이가 참 묘한 거 같아요. 서로에게 꼭 맞는 상대를 만난다는 건, 사랑에서뿐만 아니라 우정에서도 기적인 것 같아요.


아직도 그런 친구를 꿈꿔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듯이. 나와 꼭 맞는 친구가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땐 그 친구를 알아보고, 적절한 사랑과 응원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친구란,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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