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두운 내면의 꿰뚫음
망원렌즈의 양쪽 편에서 서로를 응시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깊고 어두운 곳에서 이해했다.
5월의 홍콩은 덥고 습했다. 나는 산지 얼마 안 된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무더운 홍콩 거리를 걸어 다녔다. 누가 봐도 관광객의 냄새를 폴폴 풍기며. 내게 홍콩은 영화 "화양연화"와 "중경삼림"의 이미지가 전부였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마치 영화 속 풍경을 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좁고 눅눅한 골목, 누군가 걸어 놓은 빨래가 보이는 낡은 아파트, 언제부터 달려 있었는지 손을 대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간판, 길가에 주차된 클래식한 빨간 자동차.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국의 풍경은 어딘지 현실감이 없었다.
영화 속 배경을 걷는 듯한 풍경에 취해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 프레임 속엔 홍콩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리 잡았다. 사진을 취미로 찍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사진을 썩 잘 찍는 편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홍콩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여러 번 보고 또 보았다. 누군가에겐 일상인 평범한 거리를 걸으며 풍경을 프레임에 담으면 그곳에 홍콩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담겼다.
정성스럽게 과일을 골라 담아주시는 아주머니, 주차된 차들 사이에 작은 나무 의자를 놓고 꼿꼿이 앉아 신문을 넘기는 눈썹이 하얀 할아버지,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볶음면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택시 기사, 한 손엔 담배를 물고 한 손엔 헤드폰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치는 전파상 아저씨, 빌딩 숲에서 신호등 사이로 유유히 날아가던 나비까지. 카메라에 담긴 풍경은 살아있는 홍콩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사진의 구석에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이들. 살아있는 그들에 포커스를 맞춰 찍진 않았지만 그 모습들이 풍경에 생동감을 준다. 무엇보다 그들은 찍히고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프레임에 숨어있는 홍콩 사람들의 모습에 혼자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사람을 찍는 것, 사람에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어려운 일이다. 내가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때 카메라 렌즈로 홍콩을 바라보며 예상치 못한 시선을 마주하고 황급히 카메라를 내려놓은 기억이 있다. 그때의 놀람, 왠지 모를 부끄러운 감정이 지금도 되살아나는 것 같다.
홍콩은 길이 매우 좁았다. 높은 건물이 수두룩한 시내 한복판도 차선이 많지 않았다. 건물은 높고 새로 지어진 듯 보였지만 사실 낡은 건물들도 많았고 어딘지 모르게 오래된 느낌과 새로운 느낌이 공존하고 있었다. 약간 언덕진 거리를 내려가는데 쓰레기 차가 보였다.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멈추진 못하고 걷는 속도를 조절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쓰레기 차 위에 사람이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커다란 눈, 인종을 짐작하기 어려운 이국적인 한 청년이 일을 하다 잠시 쉬고 있는 듯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를 발견하고 그대로 카메라를 든 채로 걷고 있었는데 하늘을 보며 쉬고 있는 그 청년이 갑자기 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순간 카메라를 내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몰래 찍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거란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물론 셔터를 누르지도 않았다. 셔터를 누르진 않았지만 빌딩 숲 사이, 쓰레기 더미 위에서 미소 짓고 있던 청년의 이미지는 내 뇌리에 박혔다.
모르는 누군가 나를 향해 카메라를 대고 있으면 그게 나를 찍고 있는 게 아니더라도 순간적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사진에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카메라 너머에서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에는 어떤 비아냥도 분노도 없었다. 그냥 순수한 미소였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내 바닥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화들짝 놀라 카메라를 내렸다. 그 무방비한 미소에 단단히 가둬두었던 내 안의 얄팍한 무언가가 파삭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내가 부끄러워했던 나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1Q84의 한 장면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아마도 영혼의 문제일 것이다. 깊이 생각한 끝에 우시카와는 그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후카에리와 그 사이에 생겨난 것은, 말하자면 영혼의 교류였다. 거의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아름다운 소녀와 우시카와는 위장된 망원렌즈의 양쪽 편에서 서로를 응시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깊고 어두운 곳에서 이해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와 소녀 사이에 영혼의 상호명시라고 할 것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어딘가로 떠나고, 우시카와는 그 텅 빈 동굴에 홀로 남겨졌다.
1Q84 BOOK 3, 무라카미 하루키, 4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