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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Mar 28. 2024

누군가의 나이를 넘어설 때 (2)  스물

그 자리에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다, 서지원

어떤 음악은 언제 어떻게 들었는지가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씩 일그러져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중2 시절, 이어폰을 꽂고 세상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유지하는 기분으로 서지원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어떤 일을 계기로 그에게 빠져들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후 발매된 베스트 앨범을 듣고 또 들었다.


서지원이 유명을 달리했을 때 그의 나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여담. 지금 이 글을 쓰다가 네이버에서 그의 이름을 치고 나무위키를 열었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닫았다. 거기엔 그에 대해 당시 내가 알지 못했던 세세한 정보들이 너무 많이 담겨 있었다. 이 글은 오로지 나의 기억에 의존한 글이 되어야 할터이니 앞으로도 과도한 자료조사는 하지 않기로 한다.)  


소위 중2병의 나이에 나는 어떠했는지 돌이켜본다. 나 역시 사춘기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고 그때 나에게 중요한 화두는 “영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자명한 진리가 나에게 아프게 다가왔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변화에 대한 거부였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미래보다 과거를 반추하는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 과거의 나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는 것이 못내 괴로웠다. 사람은 큰 상실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상실감에 빠지거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당시 나는 파란색 표지에 캐릭터가 그려진 손바닥 만한 다이어리를 갖고 다니며 짧은 단상들을 메모하곤 했었는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서지원의 유서를 크기에 맞게 프린트해서 붙여놓고 틈만 나면 읽곤 했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읽는다는 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시간, 그의 목소리는 거기에서 멈춰 있었다. 씨디 플레이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어설프지만 진심을 다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곧 세상을 그렇게 마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의 신체와 생각들, 무엇하나 고정된 실체가 없어 불안했지만, 게다가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차갑고 불확실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 진심을 다해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 용기를 갖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스무 살이 되어서도 비슷했다. 더 어렸을 땐 스무 살만 되면, 나 혼자 독립해서 살게 되면 그제야 비로소 더 큰 세상이 열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스무 살의 나는 온전한 독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괴로웠다. 막연한 책임과 부채의식에 시달렸다.


한때 나를 살게 했던 서지원의 나이를 넘어설 무렵 나 역시 불안했고 언젠가 더 강해지기를 염원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 나보다 먼저 길을 나선 이들의 말이라면 일단 다 귀담아듣기로 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휘청이면서도 동시에 쉽게 기대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내 안에 숨기고 감춰두었다.


그 시절 내가 다이어리 깊숙한 곳에 간직한 서지원이 남긴 말 중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건 그가 작업하고 있던 앨범이 훗날에라도 잘 되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그의 사후세계에서 나는 그가 남긴 음악을 들으며 살았다. 할 수 있다면 지금 충분히 아름답다고, 더 잘 되거나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의사 권고로 예정된 공연 스케줄을 취소하고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쉽게 소진되지 않고 건강하게 예술 활동을 해 나갔으면 한다. 남다른 재능을 가진 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능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들 모두가 그 재능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서지원의 음악을 듣던 중학생의 나는 내게 주어진 재능이 무엇일까, 그걸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나 고민하고 막막해했었다. 나에겐 무언가를 이룰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서글퍼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게 재능이 없거나 혹은 재능을 펼칠 기회가 이번 생에 없더라도 타인의 재능을 온전히 사랑하고 즐기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생각한다. 재능을 갈고닦고 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재능에 감탄하고 감동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 그러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삶을 살아나갈 용기와 힘을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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