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 Mar 14. 2024

누군가를 향한 한 줄의 진심

싸이월드 일촌평에 담긴 마음들

나는 소위 싸이월드 세대다. 고등학생 때 처음 싸이월드를 접하고 대학 시절 인간관계를 싸이월드로 채우고 사회에 나갈 때쯤 페이스북이 대세가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 놀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싸이월드를 잘 쓰지 않았으니 내가 열심히 “싸이질”을 하던 시기는 고작 4,5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을 “싸이 감성”에 취해 살았던 탓인지 그때의 기억은 남다르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SNS도 꾸준히 포스팅을 하거나 연락처를 연동해서 현실의 지인들과 소통하는데 쓰고 있지 않다. 그렇다, 싸이월드는 요즘 SNS와 다르게 불특정 다수를 향하기보다 ”일촌“, 그러니까 서로 친구를 맺은 사람들을 향한 매체였다. 최근 읽은 <겨울의 언어>에서 유튜버이자 다양한 글을 쓰는 저자 김겨울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건 괜찮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도무지 부끄러워서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중 앞에 나서고 글을 쓰고 말을 할 용기를 갖고 있나 보다. 나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내가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거란 마음이 있어서 인지 괜찮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익명성에 기대 누가 볼지 모르는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사람은 참 알 수가 없다.)


싸이월드는 지인과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 다가갈 수 있는 매체였지만 기본적으로 폐쇄성에 기반한 서비스였다. 나는 대부분 일촌들에게만 게시물을 공개했다. 그렇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공개된 일기를 쓰고 사진을 올리고 일촌 신청을 하고 방명록을 남겼다. 지금은 어떤 SNS에도 내 사진을 직접 올리지 않을뿐더러 현실의 나를 특정할 만한 정보는 노출하지 않는 한층 더 폐쇄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싸이월드는 지금 보다 더 유연하고 무서울 것이 없었던 20대 초반에 그나마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구였던 셈이다.


잊을 만하면 부활하던 싸이월드 데이터 백업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계정은 그나마 기억나지만 비밀번호는 잊은 지 오래였다. 비밀번호 찾기를 해서 원하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부지런함 대신 나는 나의 과거가 그대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택했다. 내 싸이는 나의 불완전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있다. 내가 남긴 흔적이 아니라 타인이 내게 전한 흔적들. 방명록과 일촌평은 백업을 해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일촌평과 방명록도 있다.


일촌평을 쓸 때는 누구나 진지한 시인이 된다. 이 사람과 나 사이의 관계를, 내가 이 친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한 줄로 매끈하게 뽑아낸다. 1대 다수의 관계가 아니라 1대 1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마음이 거기에 담긴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일촌평을 끄집어 내 보면 그때의 내가, 타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드러난다.


나를 “사포”라고 부르던 선배가 있었다. 사포처럼 성격이 까칠하다는 뜻이다. 그때 나는 상처받기 싫어서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강하게 말하고 센 척하곤 했다.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 조차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나의 결핍을, 나의 나약함을 여러 겹으로 포장해 겨우 드러내 놓았다. 내가 누구인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는 것이 공포스러웠고 지금도 그런 공포는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다가오려 하면 뾰족하게 날을 세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선배는 그런 내 모습을 알고도 무작정 “손절”하는 대신, 사포라는 말로 나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를 규정짓는 말들에 극도록 거부 반응을 표하면서도 사포라는 별명은 딱히 싫지 않았던 기억이다. 오늘의 나 역시 그 마음을 좋게 해석한다. 나를 까칠하다고 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바라보고 함께 했던 지인들을 떠올린다.


한 후배가 남긴 일촌평은 내 이름 석자에 자기 식의 한자를 붙여 한 글자씩 의미를 부여해 완성한 작품이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이름과 내가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그렇게 연결 지어 써준 일촌평에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배를 다시 보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섬세한 위트를 갖고 있었다니.


시간은 기억을 지우고 왜곡한다. 나는 그게 편하다.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아 몇십 년 전의 일도 어제처럼 눈앞에 들이대는 것보다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오늘의 내가 바라본 과거의 의미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 지나간 일은 그렇게 기억에 남겨두었다가 이렇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꺼내놓고, 낮에는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전 01화 그러니까 잠이 오지 않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