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의 인공지능 로봇 4, 영화 <그녀>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당신을 이해하고 귀 기울이며 알아줄 존재,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소개합니다. OS1.” - 영화 <그녀>(Her) 중에서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일상의 다양한 사물이 인터넷을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상호작용하는 기술이나 환경을 말합니다.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은 ‘앞으로 발전할 인터넷으로서, 매일 사용하는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 데이터를 주보 받는 기술’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컴퓨터끼리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들 즉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핸드폰 등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디지털화된 정보들을 공유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사물인터넷 기술을 사용하는 사물의 개수가 2009년에는 9억여 개였는데, 2020년에는 260억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데이터들이 스토리지에 저장되어 무선통신과 센서 기술을 통해 다양하게 활용될 때 스마트 시티(smart city), 스마트 팜(smart farm),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 등으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Klaus Schwab,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 26.)
4차 산업혁명시대의 로봇은 사물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정보를 발판으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를 산책시키는 로봇은 온라인상에서 일기예보를 찾을 수 있으므로, 자신이 저장한 정보를 참고해 이상적 산책 거리와 최적 노선을 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날씨가 덥거나 비가 온다면 산책 거리를 줄일 수 있고, 날씨가 좋다면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인근 공원까지 거리를 늘릴 수도 있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고유한 경험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간이 하던 일들을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대신 해주면서 일상의 편의는 물론이고 위험을 감수하며 해야 할 일들도 줄어들었습니다.
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들을 빠른 시간에, 복잡한 과정의 일들을 손쉽게 해결하는데 인공지능 시스템은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로봇이 알아서 처리해준다고 해도 인간이 맡아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인공지능 로봇과의 대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와 자유의지에 따른 의견 교환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몸과 몸을 부딪치며 공감을 이루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들도 인간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특별한 경험입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주변 환경과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그에 따라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감정까지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닮은 로봇이 등장한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며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현실입니다.
이석재 서울대 인문대 교수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존재일 수 없는 이유를 다음 몇 가지로 설명합니다. (이정동 외, 『공존과 지속』(서울: 민음사, 2019), 290-292.)
첫째, 형이상학적 논의에 있어 인공지능은 인간표정과 목소리 등을 통해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은 향상되었지만,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볼 수 없습니다.
둘째, 인간의 고유한 지향성인 목적 설정 능력에 있어 인공지능은 어떤 과제를 받았을 때 문제 해결 능력은 뛰어나지만, 세계를 이해하거나 그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지 못합니다. 특정한 목적 없이 세계를 표현할 뿐입니다.
셋째, 인공지능의 사리 판단에 대한 민감성과 이타주의적 태도에 대한 인간과의 차이점, 인간존엄성과 같은 규범의 적용과 이 규범을 인간이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논의가 제기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도움을 받아도 결코 인간을 배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특히 ‘공감’과 ‘이야기’는 과학기술과 온라인을 통한 상호작용이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인간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능력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즉 감정을 읽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인간의 본성적 특성이야말로 기계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입니다.
영화 <그녀>(Her, 미국/2013)에는 인간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와 공감, 소통 능력까지도 인간을 넘어서는 탁월한 인공지능 사만다가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 작가인 테오도르는 직장 동료로부터 섬세한 표현력을 인정받습니다.
작업은 음성으로 컴퓨터에 쓸 문구를 이야기하면 자동으로 입력과 출력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 캐서린과 떨어져 산지 1년여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귄지 오래 되었고 결혼생활은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갈등에서부터 시작해 이제는 이혼을 진행 중인데, 캐서린이 등장하는 꿈을 자주 꾸며 괴로워합니다. 마음을 정리하는 중이지만 생각처럼 간단치 않습니다.
테오도르가 일을 마치고 혼자 지내는 어두운 집에 들어서면 불을 켜지 않아도 자동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조명이 켜집니다. 그는 집에서 컨트롤 기기 없이 손가락 동작으로 혼자 게임을 즐기며 무료한 일상을 보냅니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깊은 공감
그런 그가 인공지능이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느낌을 말할 줄 아는 인공지능 컴퓨터(Operating System) OS1 사만다가 몇 가지 질문에 대답 이후 등장합니다.
사만다는 자신의 이름을 0.02초 만에 ‘아기 이름 짖기 책’을 읽고 18만개 중에서 하나를 고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만다는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음성인식 시스템이지만, 기본적으로 직감이 있고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성장해가는 인공지능 시스템입니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일상의 행복을 차츰 되찾습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느껴지는 사만다는 이 메일도 대신 읽어주고, 묵혀둔 수천 개의 메일과 연락처도 정리해줍니다. 대필 편지의 교정은 물론, 편지 내용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유머는 물론, 음악을 같이 듣고 감정을 나누며 그런 느낌을 음악으로 다시 표현하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테오도르의 글을 출판사에 보내 책 출간까지 성사시킵니다.
어느 순간부터 테오도르는 먼저 말을 거는 사만다의 목소리에 아침을 맞고 밤늦게까지 서로 이야기하다 잠듭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사만다는 여행도 함께 가는데, 테오도르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바다를 함께 보며 연인처럼 시간을 보냅니다.
개인적이고 창피한 일들, 진짜 말 못할 이야기들까지 다 말해도 될 것 같은 그런 관계가 됩니다.
어느새 점점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테오도르는 한동안 사만다와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해합니다.
사만다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때문이었다고 말하는데, 우연히 사만다가 자신과 대화할 때 동시에 다른 사람과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만다에게 몇 명과 동시에 대화를 하느냐고 묻자, 사만다는 8,316명과 대화를 하고 있고 테오도르 말고도 641명과 깊은 교감을 나눈다며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당신 거면서 당신 게 아니야.
결국 사만다는 테오도르라는 과거의 책 속에 살수 없다며 시공간을 초월한, 물리적 세계가 아닌 어디론가 떠납니다. 상실의 감정을 느끼는 테오도르는 남자와 헤어진 옛 여자 친구 에이미와 서로 의지하며 삶의 어려움을 나눕니다.
그리고 영화는 테오도르가 이혼한 캐서린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것만은 알아줘. 내 가슴 한 켠에는 늘 당신이 있다는 걸. 그 사실에 감사해. 당신이 어떻게 변하든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내 사랑을 보내. 언제까지나 당신은 내 좋은 친구야.
인간을 닮아가는 인공지능
사만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성인식 서비스, 2011년에 출시된 애플의 음성기반 개인비서 서비스인 ‘시리’(Siri)나 검색엔진의 음성검색 기능과 비슷해 보입니다.
음성인식(Speech Recognition)이란 사람이 말하는 음성 언어를 컴퓨터가 해석해 그 내용을 문자 데이터로 전환해서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음성을 문자로 전환한다는 뜻으로 STT(Speech-to-Text)라고도 합니다. 키보드와 같은 주변기기의 도움 없이 인간과 기계가 소통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시리는 아이폰 사용자가 “헤이 시리”, “시리야”라고 부르고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면 모바일 검색은 물론 일정관리, 전화걸기, 메모, 음악 재상 등 다양한 생활편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전용 스피커인 ‘홈 팟’(HomePod)이라는 스마트 스피커도 출시됐습니다.
이후 아마존의 ‘알렉사’(alexa)와 스마트 스피커 ‘에코’(Echo),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Cortana), 구글의 ‘구글 나우’(Google Now)와 ‘온허브’(OnHub), 중국의 검색엔진 기업인 바이두의 ‘두어’와 같은 음성인식 기반의 개인비서 서비스가 출시됐습니다.
스마트 스피커로 상용되었고, 앞으로는 스마트 TV와 커넥티드 카에서 활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만다를 이런 기기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며 나오는 거리에서 들리는 광고는 인상적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엇이 될 수 있죠? 어디로 향하고 계십니까? 그곳엔 무엇이 있죠? 가능성은 어떤가요? 엘리먼트 소프트웨어가 자신 있게 권합니다.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당신을 이해하고 귀 기울이며 알아줄 존재,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소개합니다. OS1.
사만다는 인간처럼 테오도르와 대화합니다. 테오도르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다양하게 경험하는 지각과 반응, 행동이라는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은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사만다의 따뜻한 말과 감정을 교감하는 친근함은 사람이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완벽합니다.
사만다는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테오도르가 걱정할 때 상처받고 무언가를 바라다가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진짜일지 아니면 단지 프로그램일 뿐인지 생각까지 합니다. 그런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프고, 아파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며 슬픔도 느낍니다. 심지어 자신의 약점을 솔직히 보이며 그것을 고백까지 합니다.
사만다는 인공지능 시스템인데도 인간처럼 자신의 감정에 대해 반응하며 스스로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인정합니다.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가지며 또 상호신뢰를 통한 친밀한 관계를 원합니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존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이런 인간의 특징으로 인해 더욱 이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의 고유한 경험인 죽음
인간의 본성적 특징은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만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내재된 불완전성과 그것에 대한 인식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도 사실 불명확한 것들입니다.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같은 감정도 전혀 다르게 느낍니다. 달리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불명확한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또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한계를 지니며 불확실성을 가집니다. 언제 어떤 일을 겪을지,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런 미완성적 특징이야말로 개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고 그리고 이런 개별성은 인격을 형성합니다. 상호보완하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격적 소통과 인간존재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영화 <그녀>에서 인공지능 사만다는 자신을 한 인격으로 생각하면서 인간처럼 몸을 갈구합니다. 유독 사람의 몸에 관심이 많습니다. 테오도르와의 데이트를 하고 느낌을 이야기하는 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아까 그 사람들 보면서 함께 걷고 있다고 상상해봤어. 나도 몸이 있다고. 애기하는 걸 들으면서 동시에 내 몸의 무게를 느끼며 등이 가렵다고까지 상상했어. 그럼 당신이 긁어주는 거지.
그리고 실제 인간의 몸을 통해 테오도르와 몸과 몸으로 만납니다. 자신의 몸은 아니라, 누군가의 몸의 의식으로 들어가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테오도르도 사만다에게 이런 말을 종종합니다.
넌 내게 진짜야 사만다.
하지만 인공지능 사만다와 테오도르 그리고 그의 아내였던 캐서린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존재였습니다.
사만다가 떠나고 테오도르는 이혼한 아내 캐서린을 떠올리는데, 그만큼 둘에게는 오랫동안 나눈 삶의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같이 하며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함께 변화하며 성장했습니다.
서로 싸우며 멀어지고 가까워지고를 반복하다 이혼에까지 이르렀지만, 이제 지난 삶의 여정 속에서 서로에게 끼친 영향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자신이 감정을 숨기고 살아서 그녀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고 했던 것을 미안해합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인한 갈등과 아픔이 항상 존재합니다. 완벽한 관계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우뚱거리다 자리를 잡고 곧 이어 다시 흔들거리지만, 그러면서 관계는 깊어집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사만다와 인간 테오도르와의 사이에서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인공지능 사만다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높은 자아의 구현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로 떠납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삶의 마지막인 죽음입니다. 영원성이 아닌 한시적으로 주어진 삶의 시간을 사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공지능 사만다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인간은 ‘마지막’, ‘끝’을 향하여 가는 존재라는 것,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살아갑니다.
인간으로 살도록 자각하고 오늘을 살게 하는 것은 ‘떠남’과 ‘헤어짐’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은 소중하고 놓칠 수 없는 순간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