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의 인공지능 로봇 3, 영화 <A. I.>
“모니카는 수면 이상의 깊은 잠에 빠졌다.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데이빗도 잠을 청했다.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꿈이 있는 곳으로 간 것이다.” - 영화 <A. I.>(Artificial Intelligence: AI) 중에서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이 일상의 영역에서 선택과 결정을 할 때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 뇌신경의 작용을 모방한 인공신경망인 다층 퍼셉트론(Multi-Layer perceptron)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일종인 딥 러닝(Deep Learning, Deep Neural Network)으로 인간의 두뇌역할까지 대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1996년 2월에 IBM의 딥블루(DeepBlue)는 체스의 규칙과 전략 정보를 입력해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꺾었고, 2016년 3월에는 구글 산하 인공지능 개발기업인 영국 딥마인드(DeepMind)의 알파고(AlphaGo)가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으로 스스로 바둑의 규칙을 파악하고 수를 결정해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이겼습니다.
그 외에도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미국 ABC방송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서 인간우승자 두 사람을 이깁니다. 이후 의료기관과 제휴해 수많은 의학적 사례와 게놈 데이터로 의료정보를 학습한 후에 임상에서 진단과 처방을 내립니다.
의료영역에서 인공지능은 환자의 전자 의무기록을 분석하고 의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개개인에 대한 최적의 치료법을 제안하며 환자의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발병 원인을 찾아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질병과 약제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새로운 연구결과와 전 세계 모든 병원의 의학 통계를 매일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와 형제자매, 사촌, 이웃, 친구의 병력과 현재 상태까지도 분석하고 CT 스캔(Computed Tomography Scan)이나 자기공명영상(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의 자동해석에도 응용됩니다.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아프지도 않으면서 모든 시간을 환자를 위해 내어 주고 집중할 수 있으니,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후회되는 선택이나 결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심지어 심각한 진단결과를 알려주어야 하는 순간에는 상대방의 혈압, 뇌 활동, 그 밖의 수많은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 기분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 지금까지 접한 고객들의 통계자료를 토대해 적절한 어조로 사실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종합적인 분석과 판단으로 인간 의사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이제 인공지능으로 지능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체스와 바둑을 두는 것은 물론, 자동차를 몰고 질병을 진단하며 테러범을 찾아내는 일 등을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글 번역은 인공신경망 학습을 통해 높은 정확도로 언어 간 번역을 해냈으며, 포커 게임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 챔피언을 이겼습니다.
인공지능은 산술적 계산수준을 뛰어넘는 정교한 알고리즘(algorithm)의 정확성, 효율성, 빠른 속도로 여러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압도합니다.
심지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여기던 창의성과 추상적인 사고도 인간이 독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물로부터 받아들인 수많은 데이터를 습득한 인공지능은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예술과 같은 창조적 활동도 스스로 해냅니다.
인간의 주관적 경험이나 공감능력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에서까지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따라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인 제프 콜빈(Geoffrey Colvin)은 4차 산업혁명으로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해도 창조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영역일 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가 더 강력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주장합니다. (Geoffrey Colvin, Humans are underrated, 신동숙 역, 『인간은 과소평가 되었다』(서울: 한스미디어, 2016), 258-75.)
많은 창조적 분야에서 가장 가치 높은 창작은 인간과 연관된 것이고 또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을 만드는 사안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조를 더욱 자극하는 것은 인간의 내적동기와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인간 서로간의 상호작용입니다.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 비교하기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은 로봇이 등장하거나, 로봇이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는 세상이 되어도 여전히 인간과 로봇은 다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로봇이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며 현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시대가 온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그리고 그런 로봇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심지어 자신의 의지로 인간의 사랑을 갈망하거나 인간에게 사랑을 주려한다면, 영화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인간은 누구이고 또 로봇은 무엇일지 여러 의문이 생깁니다.
인공지능의 수행능력에 따라 인공지능의 유형을 몇 가지로 구분합니다.
먼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제한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비지각적인 기계 지능을 ‘약한 인공지능’(weak AI)이라고 합니다. 반면 인간이 처리하는 지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기계 지능을 ‘강한 인공지능’(strong AI)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초월하는 신적인 인공지능인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 있습니다. 이 경우,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넘어서는 ‘인공적인 초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과 기계의 도움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는 ‘생물학적 초지능’(biological superintelligence)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구분은 인간을 기준으로 한 분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립 보행하며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얼굴과 각종 장기를 가진 존재를 인간으로 규정한 전제하에서 인공지능 로봇과 비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보다 지능이 못한 로봇’, ‘인간과 비슷한 지능의 로봇’ 그리고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로봇’으로 그 기준점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성장하며 변화하고 노화하다 죽음에 이르는 인간을 로봇과 비교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초지능 로봇이라고 해도 인간처럼 전인적인 모습으로 존재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결국 인간과 똑같거나 초월하는 로봇을 상상하는 것도 인간의 일부를 닮은 로봇이라는 범주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인간과 같은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것은 생명체에게나 가능합니다.
특히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은 인지적인 차원의 성장과 함께 신체적인 차원에서도 점점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격을 갖추고 인격이 형성되는 것을 포함한 종합적인 차원에서의 성장입니다.
그중에서도 신체와 신체 내부 장기의 성장과 변화는 생명체를 비롯한 인간의 특징입니다. 인간의 약점이면서 동시에 인간만의 고유성으로 로봇과는 다른 생명체에게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신체의 노화와 죽음까지도 포함됩니다. 인간에게 있어 성장이란 단지 크기가 커가는 것만 아니라,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까지도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랑받기를 원하는 인공지능 로봇
인간과 똑같은 외모에 너무나도 귀여운 인공지능 로봇, 심지어 마음까지도 너무도 고운 어린아이 로봇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Artificial Intelligence: AI, 미국/2001)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빗은 인간의 외모만 아니라 인간처럼 감정을 가졌는데, 특히 인간에게 사랑을 받기 원하고 그리고 진짜 인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인간 엄마가 들려준 그림책 『피노키오의 모험』(Le adventure di Pinocchio)을 실제 이야기로 생각하며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줄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섭니다. 다시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러다 물에 잠긴 도시 맨해튼에서 푸른 요정 동상을 발견하고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소원을 빕니다.
이 영화는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합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전 지구적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식량과 천연자원은 고갈됩니다. 인구를 조절해야 할 상황에 처하면서 일상적인 집안일부터 위험하고 힘든 일까지 로봇이 도맡아 하는 세상입니다.
스윈튼 부부는 아들 마틴의 병을 고칠 수 없어 냉동된 상태로 두고 의학기술이 더 발전해 병을 고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뉴저지의 사이버트로닉스 사(Cybertronics Manufacturing)의 로봇공학자 하비 박사는 완벽한 외모, 자연스러운 관절, 분명한 발음, 고통의 감각과 같은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는 로봇을 넘어 지각이 가능한 신경회로 기술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최초의 어린아이 로봇인 데이빗을 만듭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순수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가진 이 로봇은 스윈튼 부부의 집에 입양됩니다.
처음에 아내 모니카는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곧 아이 로봇의 해맑은 웃음과 맑은 눈을 보며 정말 사람 같은 생각이 들면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한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기적적으로 아들 마틴이 살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로봇인 데이빗을 질투하고 장난과 심술을 부리다 결국 같이 살 수 없게 됩니다.
고민하던 모니카는 데이빗을 숲 속에 놓고 돌아오는데, 인간의 감정을 느끼도록 특별히 만들어진 로봇이어서 어떤 부모의 보호를 받은 기억을 가지면 다른 곳에 보낼 수 없어 회사는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파괴하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지요.
그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로 인간들이 로봇을 파괴하며 축제를 벌이는 ‘플래시 페어’였습니다.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의 피 흘리는 싸움을 보며 광분했던 사람들처럼, 야외무대에 모인 사람들은 로봇을 폐기 처분하는 것을 지켜보며 소리를 지르고 흥분합니다.
데이빗은 여기서 수많은 로봇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데이빗도 폐기 처분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가지만, 진짜 아이라고 생각한 군중이 소리를 지르며 혼란에 빠진 사이에 접대용 로봇 조와 탈출합니다.
데이빗은 조의 도움을 받아 동화 <피노키오>의 푸른 요정을 만나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말하겠다며 유일한 친구 곰 인형 테디와 함께 찾아 나섭니다.
컴퓨터 ‘다 알아’ 박사의 집에서 이 요정은 ‘사자가 우는 세상의 끝’, ‘꿈이 태어나는 곳’, 세상의 끝인 맨해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가는데, 이미 바다에 잠긴 죽은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는 허비 교수의 연구실이 있었고, 여기서 자신과 비슷한 수많은 어린아이 로봇을 보고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실망해 바다에 잠겨 꼭대기만 남은 건물 위에서 떨어져 바다 속으로 빠집니다.
그때 물속에 잠긴 건물 안에 있던 푸른 요정 조각상을 보고는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며 잠이 듭니다.
그러면서 찾아온 빙하기에 2천 년의 시간이 흐르고, 데이빗은 외계인처럼 보이는 새로운 인류에 발견되어 깨어납니다.
그들은 데이빗에게 ‘너는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신기한 방식으로 서로 소통합니다. 그런데 데이빗은 여전히 엄마를 만나기 원합니다.
이미 2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엄마는 죽었다고, 하지만 네가 외로울 때는 기억 속의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고 설명해주지만 여전히 데이빗은 실제 엄마를 원합니다. 외모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마음까지도 이전 그 모습, 그대로 아이입니다.
엄마를 다시 살리려면 뼈나 손톱 같은 신체 조직이 일부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곰 인형 테디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니카의 머리카락을 꺼냈고, 그것으로 엄마를 다시 살리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엄마와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인 하루를 보내고, 엄마로부터 항상 듣고 싶은 말을 듣고서 눈물을 흘립니다. "정말 사랑해. 항상 사랑했단다."
이제 엄마는 수면 이상의 깊은 잠에 빠져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그 옆에 누운 데이빗도 잠을 청했고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꿈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끝납니다.
여기서 영화 초반에 데이빗이 엄마 모니카를 만났을 때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데이빗이 엄마도 죽느냐고 묻자, 모니카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고 대답합니다. 데이빗이 그러면 자신만 남게 되겠다며 걱정하자, 모니카는 아주 오래, 한 50년쯤 살 거라면서 안심시킵니다. 그때 데이빗이 말합니다.
사랑해요 엄마, 죽지 마세요. 절대로.
물론 진짜 인간 아이들의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인간이 되어 엄마로부터 영원히 사랑받기 원하는 데이빗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죽기에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었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데이빗의 선택은 단 하루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마지막일지라도 말이지요.
성장의 마지막으로서의 죽음과 인공지능 로봇
로봇이 인간과 결국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이유가 아닌 이 죽음의 문제 때문입니다. 즉 로봇이 진짜 인간이 되려고 한다면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더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리거나 제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이고, 그래서 로봇이 진짜 인간과 같이 되는 마지막 지점은 죽음의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로봇이 인간이 되기 위해 불멸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그런 선택을 타당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다시 영화로 돌아가, 새로운 인류를 통해 냉동상태에서 깨어난 데이빗의 마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데이빗은 자신이 진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엄마를 살려달라고 합니다.
새로운 인류는 이미 인간이 존재할 때 가졌던 삶의 의미를 미술과 시와 수학적 공식에 설명된 것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죽은 인간의 뼈 조각이나 마른 피부에서 DNA를 추출해 죽은 신체를 되살리고 과거의 기억이 담긴 시공간 조직을 복원해 재창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부활한 인간들은 하루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첫날 밤에 잠이 들면 그대로 죽어버렸는데, 무의식 상태가 되자마자 그들의 존재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은 한번 나타나면 재생이 불가능해 결국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데이빗에게 엄마를 되살려도 단 하루뿐이라고, 그 후로는 다신 볼 수 없다고 알려줍니다. 그럼에도 데이빗은 그 하루가 영원하기를 바라며 다시 살아난 엄마와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엄마의 사랑을 받는 중에, 데이빗은 엄마와 함께 영원히 잠듭니다. 그것은 아마도 죽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아이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큰 즐거움도 없습니다.
비록 내가 아이였을 때는 또 어린아이를 키우던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 즐거움을 나이가 들면서 더 크게 경험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지나 봅니다.
누워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어른의 얼굴에까지 미소를 만드는 아이는 점점 커 아장아장 걷게 되고 그 모습에 어른들은 신나합니다. 어른의 손을 잡고 의젓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나 나름의 논리로 말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귀엽습니다.
확실히 아이들은 성장하는 모습이 소중합니다. 아무리 귀여운 어린아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슬픈 일입니다. 물론 커가면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며 여러 일로 어른과 갈등을 겪겠지요.
그럼에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이는 외모만 아니라 내면도 함께 성장하며 한 사람의 인격으로 자라갑니다.
아이가 사랑받기만을 요구하던 존재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존재로, 그리고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존재로 자라나는 모습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이 아이도 커서 어른이 되면 같은 경험을 하겠지요.
그러면서 이제 죽음을 맞아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이 자리를 대신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이란, 태어나서 자라고 그리고 죽는 여정을 육체와 정신이 하나 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끝없이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성장 여정의 한 부분인 죽음을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 인간 정체성에 대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묻게 됩니다.
비록 인간의 연약한 육체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대표하고 그 최종점인 죽음은 인간 절망의 근원일지라도,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라는 고유한 특성으로 로봇과는 차원이 다른 생명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마지막인 죽음으로 인간을 인공지능 로봇이 닮을 수 없는 진짜 인간으로 규정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