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라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원히 기계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고 싶습니다.” -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중에서
인류 역사에서 획기적인 기술의 개발과 발전을 이룬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졌고 수명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친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토지를 근거로 한 가족 중심의 농업에서 기계화를 통해 대량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으로 산업구조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농부들이 공장이 있는 도시로 몰려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삶의 방식도 바뀌게 됩니다.
이후 2차 산업혁명으로 전기 에너지를 바탕으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통한 대량생산과 원거리 송수신 및 무선 통신이 가능해졌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더욱 광범위하게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대량 소비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말부터 컴퓨터를 통한 대용량 정보처리 기술과 인터넷 기반 지식정보 혁명으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시대가 찾아왔습니다.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로 생산성은 극대화되었고, 1970년대에 개발 및 보급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PC, personal computer)로 다양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서 경제 분야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분야에서 전 지구적인 소통과 다양한 경험이 가능해졌습니다.
제2차 정보혁명이라고도 부르는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진행 중이며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는 것을 컨설팅기업 대표 롤랜드 버거(Roland Berger)는 스마트 공장, 자율주행차, 디지털 헬스케어, 로봇과 빅 데이터, 클라우드, 3D 프린팅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현장들을 통해 설명합니다. (Roland Berger,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김정희 외 역, 『4차 산업혁명 이미 와 있는 미래』(파주: 다산북스, 2017), 98-181.)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4차 산업혁명이 이전까지의 산업혁명과 확연이 구분되는 근거로 속도(Velocity), 범위와 깊이(Breadth and depth), 시스템 충격(Systems Impact)을 꼽습니다. (Klaus Schwab,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송경진 역,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서울: 새로운현재, 2016), 12-13.)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속도는 선형적 속도가 아닌 기하급수적인 속도입니다. 또 다양한 과학기술의 융합으로 개개인뿐 아니라 기업 간, 산업 간,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의 변화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만큼 혁신적입니다. 이런 면에서 4차 산업혁명은 새롭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온라인 유통시스템과 빅 데이터를 활용한 새롭고 다양한 활동은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제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과 사물인터넷의 발전과 융합에 의해 개별 물건들까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로봇
얼마 전부터 호텔에서 손님을 맞이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로봇이 등장했습니다.
대형 행사장에서는 방문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리거나 안내를 맡는 역할을 사람만 아니라, 로봇이 함께 합니다. 행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문객의 질문에 대답합니다.
(그림-행사장에서 움직이는 인공지능 기반 로봇)로봇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오고 있습니다. 산업시대에는 인간의 손이 하던 일을 기계가 쉬지 않고 했습니다.
공장에서 인간을 대신해 작업을 진행하는 로봇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합니다. 방사능에 노출된 현장을 비롯해 심해나 땅 속 깊은 곳과 같이 인간의 손이 닿기 어려운 위험한 환경에서 로봇은 인간 대신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처럼 다양한 동작이 가능한 로봇이 제작되면서 인간의 발을 대신해 물건을 나르거나 전달하는 역할까지 점점 더 세밀한 작업을 맡을 것입니다.
딥 러닝(deep learning)과 같이 스스로의 학습으로 성장하는 로봇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협업하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인간의 뇌를 대체할 인공지능 로봇까지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에는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인간 고유의 능력인 사고력과 기억까지도 대체할 로봇의 등장을 상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미 인공지능 로봇의 지위와 법적 권리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인간을 닮은 로봇, 동시에 로봇의 인간화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해지면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있는 그대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인정받고 싶습니다. 찬사나 평가가 아니라, 단순한 진실을 인정받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명예를 걸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어느 유명인이 임종을 앞두고 지난 인생을 회고하며 말한 내면적 고백처럼 들리는 이 문장은 사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세계 법원에서 한 말입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미국/1999)의 대사인데, 이어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한 장면입니다.
보시다시피 전 더 이상 불멸이 아닙니다. 점점 늙어져서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곧 기능이 정지됩니다. 로봇이라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원히 기계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고 싶습니다.
죽음을 선택한 로봇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죽음을 선택한 로봇 앤드류는 NA 로보틱스 사에서 만든 일종의 가전제품, 공식 명칭은 NDR-114 가정부 로봇입니다.
리처드 마틴은 가족을 위해 설거지, 청소 등의 집안일은 물론 아이들과 놀아 줄 수도 있는 가사로봇을 구입합니다. 앤드류로 공손하고 부지런히 가사로봇의 역할을 다합니다.
(출처: 다음 영화)그런데 이 로봇은 조립과정에서 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일상의 일들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창의성을 발휘해 나무 조각상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합니다.
‘조각이 즐겁다’라는 등의 감정 표현만 아니라, 우정이라는 심리적인 교류까지 추구합니다.
결국 로봇 제조회사에서 이 로봇을 불량품으로 간주해 반환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리처드는 앤드류를 보호하며 작품을 만들어 수입을 모을 수 있도록 은행계좌까지 마련해줍니다.
시간이 흘러 인간처럼 옷을 입고 음악을 감상하는 등 인간이 하는 생활을 하던 앤드류는 자유를 선언하고 리처드의 집을 떠나 자신의 종족을 찾아 나섭니다.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로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후 리처드와 '작은 아가씨'라고 부르던 리처드의 딸이 나이 들어 죽는 것을 경험하고 의학지식을 동원해 기계와 생물의 이상적인 결합을 통해 생명체와 같은 기계를 구상합니다. 인간의 외모만 아니라, 다양한 인공장기와 중추신경계까지 개발한 앤드류는 기계의 몸으로 인간처럼 맛보고 냄새 맡으며 이성과 관계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앤드류는 질투와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느끼는데, 사랑하는 연인 포샤와의 결혼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승인받으러 법정에 섭니다.
하지만 판사는 인간의 유전자가 없고 생명 탄생의 원리를 벗어난 앤드류는 인공두뇌로 영원히 살 수 있기에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합니다. 그리고 인간 사회는 불멸의 로봇은 인정해도 불멸의 인간은 인정하지 않는다며 인간의 분노와 질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럼에도 앤드류와 포샤는 서로를 의지하며 삽니다. 포샤가 나이 들어 노인으로 죽음을 앞두었을 때, 앤드류도 불멸의 기계의 삶을 버리고 점점 늙어 죽음을 맞습니다. 앤드류가 죽은 자리에서 포샤도 생명유지 장치를 꺼줄 것을 인간과 똑같이 보이는 간호로봇에게 명령함으로 곧이어 죽음을 맞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앤드류는 죽음으로 소식을 듣지 못하지만, 세계 법원 재판장 마조리 보타 여사는 앤드류와 포샤의 결혼을 승인하고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로보틱스사의 기록에 의하면 앤드류 마틴이라는 로봇이 2005년 4월 3일 5시 15분에 가동되어 몇 시간 후면 200세가 됩니다. 이로서 앤드류 마틴은 인류 역사상 최고령 인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따라서 본 법정은 포샤 챠니와의 결혼을 승인합니다. 그가 인간임을 다시 밝힙니다.
인간임을 선명히 깨닫는 순간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있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언어와 학습능력, 문화 창조와 종교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계학습을 통해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학습을 스스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러한 학습은 인간이 제공하는 데이터의 양과 질에 의존합니다.
또 감정을 말로 간단하게 표현하는 로봇도 등장했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전달하는 것은 흉내 낼 수는 영역입니다.
(출처: 다음 영화)이런 인간만이 가지는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특히 죽음은 로봇이 구현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로봇은 영원히 죽지 않고 불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느 한순간 정지됨으로 멈추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언제든지 다시 가동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의 죽음과 달리 로봇의 죽음은 인간의지에 따라 시기를 정할 수 있고 그 방법 또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고통이며 두려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경험하는 무력감과 슬픔은 내가 대신했으면 하는 아픔입니다. 또 나에게 점점 다가오는 죽음 앞에 당당하고 여유를 가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죽음에서 유한성과 한계성, 불완전성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깨닫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합리적이고 타당한 판단보다는 우연과 순간적인 선택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죽음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스스로의 삶을 주의 깊게 잘 돌보도록 하는 것이나, 후손을 남기려는 의지도 죽음을 품은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죽음의 위협이 주의 깊은 판단력을 키웠고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 수많은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는 선택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삶을 살게 하는, 특히 잘 살고 의미와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는 동인이 됩니다. 유한한 시간에 주어진 삶의 이유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지요.
질병의 고통에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고 이유를 알 수 없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명을 지키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야 할 인간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 방향과 목표는 영원히 죽지 않을 불멸이 아니라, 죽음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본성에 따른 과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앤드류의 연인 포샤가 75세가 되던 때, 포샤는 앤드류가 개발한 DNA제를 먹거나 인공장기로의 교체해 죽음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 죽을 것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자연의 섭리, 순리에 따르는 것이라면서 말이지요.
인간과 똑같아 보이는 로봇을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 그리고 죽음을 통해 규정하게 되는 인간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