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아치우먼 Sep 23. 2022

잡( job) 수다를 시작하며



잡(job) 수다를 시작하려는 이유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어쩌면 하찮은 직업상담사란 직업을 가지고 감히 잡(job) 수다를 늘어놓으려 하는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한 달짜리 직업상담사 역량 교육을 갔을 때 뒤풀이에서 모두 씁쓸하게 말했다.

 대기업 응시자나 스펙 좋은 구직자는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고급 컨설팅이나 헤드헌터에게 가지 못하는 구직자, 취업하기 힘든 구직자들이 우리에게 온다. 그래도 우리 역량이 조금이라도 높아져서 한 곳이라도 뚫어 낸다면 그거 좋은 일 아닐까? 우리는 술을 마시며 SA형(홀랜드 검사 유형에서 사회 예술형), CS형(관습 사회형)을 나누어 게임을 했다. 게임에서 지면 내담자 사례를 발표하는 벌을 주었다. 연봉은 미약했지만 그때 우리의 열정은 어느 누구보다 대단했던 게 아니었는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글로 쓰며 일을 마친 시간 지겹게 또 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 곤혹이다. 

그럼에도 수줍게 이 수다를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겪었던 사례 하나를 말해야겠다.

00군에는 타이어를 만드는 중견기업이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시 시장님이 이 기업 대표를 만나 사정사정하여 채용인원을 확보해 왔다. 11명이었고 연봉이 초봉인데도 4천만 원이었다. 채용박람회에 인원을 공지하고 구직자를 확보하라고 지시가 내려졌다. 내가 마음이 급해졌다. 가급적이면 저소득층에 있는 청년들을 어떡하든 취업시키고 싶었다. 가지고 있는 명단을 들고 부리나케 전화를 돌렸다. 목소가 흥분되었다. 이런 일자리가 흔치 않았다. 이 소도시에서.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그기 타이어 만드는 회사면... 고무 냄새 많이 나고 더럽잖아요."

"아니, 여기 다 자동화 시스템이고 완제품을 가지고..."

"싫어요. 그기 동네도 후지잖아요."

설득해도 내가 안달이었지 그 녀석들은 자기 머릿속에 있는 고정관념을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

일단 면접을 보고 합격하고 나서 안 가도 된다고 말했으나 결국 그 자리는 다른 놈들이 다 채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TV 다큐멘터리에 이 회사가 등장했다. 전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우수기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여 외국기업들이 벤치마킹을 왔다. 


TV 속 회사는 반짝반짝하고 로봇 팔들이 휙휙 날아가 라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전 자동화. 아니 스마트화라고 했다.

'씨발, 깨끗하기만 하고만. 어디 고무 냄새가 난다고! 제발 저거 좀 봐라. 그 동네가 후지면 옆 동네인 네가 사는 데는 안 후지냐?'

그 자리를 놓친 게 아까워 나는 오징어를 꽉꽉 씹으며 욕을 했다. 

그 뒤 그 회사 채용공고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흩어져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위해

뻔하지만 뻔한 걸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진로 적성 검사 결과지를 재활용에 버리면서도 아이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검사결과지는 부모가 유심히 보고 매 학년마다 변화는 과정을 분석하면 아이의 흥미나 직업적 성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있음에도 학교에서 무료 실시하는 검사라 그냥 보고 버린다)

내 아이도 헤드헌터에게 가보지 못하지만 그런 청년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술 먹은 채 어쩔 수 없이 내 앞에서 수줍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안다.

원하는 일자리를 위해 핑크 칼라(젊은 여성들의 서비스직 일자리) 노동으로 땀 흘리는 

그녀들의 곤경을 알고 있다.

평범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안정적인 직업그토록 목숨을 거는지, 알고 있다.

잭팟을 터뜨리며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력 파는 일에 진심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보통의 우리는 다 그렇다.



낙엽처럼 뒹구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도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못난 우리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야만 할 것 같다. 성공하고 유명한 사람들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그래서 다른 곳에 있는 또 못난 사람이 공감하며 같은 연대감을 느끼게. 

흩어져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얻게. 

부담 없이 그냥 흘러들어도 좋을 하찮은 이야기, 치맥 먹으며 하는 수다쯤이라고 해두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같은 직업상담사로 근무하며 구직상담 사례들을 모아 <어쩌다 직업상담사>라는 책을 같이 내자며 약속 한 동료가 있었다. 수많은 상담 자격증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열정적인 직업상담사였지만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그를 대신해 이 수다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톰 크루즈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분야에서 롱런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매 순간 진지한 태도로 주어진 일을 해 내기 위해 노력한다."

빛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직업상담사라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그의 모습이 종종 그립다.

그는 아마 천국에서 천사들의 직업을 상담해 주고 있을지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