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래 Feb 13. 2020

대저토마토 과카몰리

-10

무척이나 아쉬웠다. 지난해 오월쯤이었을 것이다. 대저토마토는 2월쯤에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고 5월쯤에 끝난다. 아무리 아쉬운 일도 마음을 접고 나면 잊을 수 있다. 그까짓 토마토쯤이야.

말이 나온 김에 짚고 간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잊는다’는 말에 가능태 같은 건 없다. 잊는다고 말하면 잊못한다는 뜻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토마토를 잊을 수 있다는 말은 토마토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저토마토가 나온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띄었고, 곧바로 주문했다. 달지 않은 과일을 먹고 싶었다. 토마토는 엠에스지 덩어리다. 짭짤이라는 딴이름처럼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다. 소금은 맛을 살려내는 마법의 가루다. 짠맛이 날 정도로 넣었다면 ‘너무 많이’ 넣은 것이다. 이 세상 무엇이든 적당한 양을 넘어서면 뭐든 좋지 않다. 그 ‘적당한 양’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 달라 가늠하기 어렵긴 하지만.

대저토마토는 그냥 먹어도 아주 맛있다. 샐러드를 만들어 드레싱까지 하면 더 좋지만. 뾰족한 부분에 십자로 칼집을 주고 뜨거운 물에 잠깐 넣었다가 꺼낸다. 껍질이 아주 잘 벗겨진다. 그것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볼에 담는다. 아보카도를 듬뿍 넣고 파프리카도 조금 썰어넣는다. 오이도 조금, 물에 담가 놓았던 양파도 조금. 퓨전 과카몰리다.

레몬즙은 조금만 뿌리고 오래된 발사믹식초를 많이. 좋은 플레인 요구르트도 조금 넣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차게 해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2인분도 아니고 3인분쯤 만든다. 둘이 먹으면 배가 부르게 먹을 만큼. 한두 숟가락 뜨고는 냉장고에 넣어둔다. 육수에 양파 하나 썰어 넣고, 달걀 하나 풀어서 밥을 조금 말아먹는다. 땅콩조림과 취나물을 곁들여서. 나물을 자주 먹으면서 김치가 줄지를 않는다.

그림으로만 보면 판타스틱하다. 초록에 빨간 색, 노란색 샐러드 위에 하얀 요구르트, 그 위에 조금 뿌려진 견과류 간 것들, 작은 수프 그릇에 담긴 국물, 그 위에 동동 떠 있는 쪽파 다진 것들. 밥 한 숟가락, 땅콩조림과 나물이 담긴 작은 종지 그릇 둘.

격정적인 재즈 가수의 목소리를 무심하게 들으며.    

아침 식사를 하고는 편집자에게 편지를 썼다.

언제 마감하고 저녁 먹으러 오세요. 제 원고를 좋아하는 사장님과 단행본 편집자 분도 함께. 굴이 다 들어가기 전에요. 굴짬뽕을 만들어 드릴게요. 바위굴과 벚굴은 맛본 적이 있나요? 그것도 맛보게 해 드리죠. 포도주 한 병 가져오시면 좋은 치즈를 내놓을 수 있어요. 대저토마토와 파프리카로 만든 샐러드도요. 드레싱은 달콤한 발사믹과 올리브 오일로 하고요.

생각해 보니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다들 바쁘니까. 이런 경우가 일반적이지도 않고. 관례적이라야 편하다. 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