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바다

그 밤의 파도는 지금도 조용히 내 마음 안에서 출렁인다.

by 두니

지난겨울,

아이의 바다가 시작된 곳은 제주였다.


제주에서의 일곱 밤이 좋았다던 아이는

강릉에서도 일곱 밤을 자자고 했다.


하지만

이박삼일의 짧은 일정은

나를 잠시 머뭇거리게 했고

나는 궁색한 농담으로 대답했다.


“이렇게 좋은 곳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써야 하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표정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강릉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에 돌아온 아이는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


대신 종이를 꺼내

긴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한 번, 또 한 번.

끝이 없을 것처럼

종이를 가로지르는 선.


힘주어 눌러 그은 그 선은

파도라고 했다.


종이를 긁고 지나간 진한 선들은

파도가 되고,

시간이 되고,

아쉬움과 감동이 되어

아이 마음에 먼저 새겨졌다.


그리고 그 위에

반복되는 곡선이 겹쳐졌다.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공간 가득 크고 넓게.


마지막으로 아이는

그 위에 문장을 적었다.


“사랑해서 할머니와

놀아서 좋았어요.”


발음은 조금 엉켰고

문장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 고백만큼은

어느 시인의 문장보다 또렷했다.


나는 한참 그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아쉬움 대신

고마움이 밀려왔다.


이 아이의 기억 속에

이 바다와 이 밤이

이토록 크게 남았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할머니인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


파도는 밀려왔다가 돌아가지만

아이의 바다는

종이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박삼일의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목소리로 완성되었다.


이틀 밤은 끝났지만

그 밤의 파도는

지금도 조용히

내 마음 안에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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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쉬움이었을까,

아니면

좋았던 시간의 부피였을까.


바다는 강릉의 바다이면서도

동시에 아이의 마음이 되어,

하얗게 부푼 마음으로

종이 위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이제 막

떠나는 법을 배우는 나이에도

좋았던 시간을

이렇게 크게 남길 줄 아는 아이.


나는 그 마음이 고맙고,

참으로 기특했다.


길게 진하게 그어진 파도 위

마지막 선언.


“사랑해서 할머니와 놀아서 좋았어요.”


아이는 여기에 사랑을 새겨 두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