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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Jan 05. 2024

나에게 맞는 정신과를 찾아 헤메는 여정

첫번째 다닌 정신과는 진단서를 차치하고라도 정말 이상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곳은 상담을 받으러 들어가면 일단 큰 모니터 두개가 의사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의사얼굴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 의사는 모니터 뒤에 숨어 방어적으로 내 이야기를 풀어갔었고, 열심히 타자를 치다가 가끔 내가 말을 중지할때면 옆으로 얼굴을 살짝 빼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애초에 공감이라는 것 자체를 잘 못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리액션이 고장난 사람인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 많은 금융권 환자들을 상대한 나머지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이상은 그녀에게 그닥 심각하게 들리지도  않는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구, 아구구’ 하는 추임새만 가끔 넣었다.


‘뭐 하자는 거지…’


그러면서 정말 죽고싶다는 나에게 자살 충동이 들 때마다 흡입하는 80만원짜리 약을 추천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더이상 이 고통이 계속되는게 힘들어서 죽고싶어하는 사람에게, 돈을 써서 그 고통을 지속하게 하라니.

우울증 환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누군가가 만든 약이 분명했다.


또 다른 병원에 찾아갔다. 이 병원은 대학교 동아리 선배의 초등학교때부터의 친구가 개업한 병원이라고 추천을 받고갔다.

이 병원에 가서 그동안 사정을 이야기하고 진단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당장 써달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동안 내 치료 히스토리를 말하고 이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상담과 복약을 한다면 진단서를 써줄수 있냐고 물어봤다.

일단 종합심리검사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약 40만원 정도 하는 검사였는데, 이 검사에서 정확한 결과가 나와야 그걸 기반으로 진단서를 써주든 말든 할수 있다고 했다

절박한 심정이었던 나는 돈이 얼마가 들든 진단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종합심리검사를 받기로 했다.


컴퓨터로 하는 반응검사 같은 것부터, 검사자와 1:1로 마주앉아 하는 2시간 가량의 아이큐 테스트나 미술검사들, 그리고 설문까지 수많은 검사들을 치렀다.

열 흘 정도 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찾아갔다.

검사결과가 나온날, 의사 상담을 갔더니 의사는 똑같은 말뿐이었다. 일주일간 어땠냐, 술은 마셨냐, 기분은 어떻냐..

그것이 그 병원만의 프로토콜이겠고 약을 처방해주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었겠지만 너무 화가났다.

그래서 종합심리검사 결과를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아 검사결과요? 그 결과에서 우울증이 나왔네요 라고 말했다.


‘그럼 그 결과 기반으로 진단서 써주실 수 있다고 말했는데, 가능한가요?‘

‘네- 우울증은 최대 한달까지 가능합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보통 3개월정도 받아오신 분들이 병가를 내던데, 그렇게 길게는 불가능한가요?’

‘네 그건 거의 입원할 수준 환자에요’


그럼 종합심리검사 받기 전에 정확히 말을 해주던가…


이 의사는 첫번째 다니던 병원보다 더 심했다. 일단 내가 어떤 사정에서 우울한지, 왜 우울한지에 대해선 전혀 알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먹던 약을 가져오면 자기가 그거랑 비슷하게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웬 40대의 인생에 쩌든 남자의사는 정신과 라는 의사가운을 입고 앉아서 매너리즘에 빠지다 못해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랑 상담을 하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죽고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들곤 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왜 정신과 의사가 된 거냐고. 왜 그자리에서 아무에게도 감흥과 도움을 주지 못한채 너와 상대방의 시간을 죽이고 있냐고.

공부를 그렇게 잘했다고 들었는데, 차라리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 왜 거기 앉아서 네 말과 태도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냐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수소문해서 겨우 다른병원을 찾아갔다.

그동안 여러사람에게 사정을 털어눈물이 다 말라서 나오지 않겠거니 했는데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의사선생님 앞에서 거의 한시간가량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동안 우울증 이야기와 회사이야기, 파혼이야기, 요즘들어 드는 자살충동 같은 것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점점 고립되어가는 기분도 설명했다. 사회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결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주변인들과의 자연스러운 멀어짐,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스트레스, 언젠간 결혼할 남자를 만나야하는데 시간만 가고 있다는 불안감, 남들이 보는 나에대한 인식과 시선들.. 단절된 가족과 말할데 없는 친구관계들.. 인생을 떠올려보니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은 그것뿐들 이었다.


선생님은 당장은 진단서를 써주지 못하지만, 일단 휴식이 조금 필요한 것 같다며 조금 더 약을 먹고 상태 경과를 지켜보며 필요하면 나중에 기간이 명시된 진단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드디어 나를 돈이 아니라 환자로 보는 사람을 만났구나.

‘일이 문제가 아니죠, 일단 사람이 살아야죠‘ 라고 말하시는 그 선생님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집에 왔다.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내가 말을 할때는 가만히 내 눈을 쳐다보면서, 같이 공감해주고 같이 슬픔에 동조해주곤 하셨다.

마음속으로 이 병원이 내가 계속 다닐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이 처음으로 편안했다.


사실 정신과는 상담을 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어느 곳에서도 상담센터에서 받듯 진지한 상담을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심정과 마음을 털어놓을 때마다 내가 왜 이런 상호작용도 되지 않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하며 울고 있어야 하나 싶었었다.

몇번 간 이후로 그들 앞에서 더이상 내 마음속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새로운 선생님과 상담후 어쩌면 진단서가 없이도 이 사람과 함께 치료해 나간다면 괜찮아질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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