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규정한다는 것
얼마 전 친정에 갔다가 십자수를 놓은 하얀색 프릴이 달린 작은 쿠션을 가져왔다. 이모와 엄마가 집을 청소하면서 구석에 이십 년 이상 처박혀 있던 쿠션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모 말에 의하면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어서 버리려고 했다가 세탁을 했더니 깨끗해졌다고 하길래, 그거 내가 수놓고 만든 거라고 답했다. 그 말에 이모는 화들짝 놀라며 "진짜 네가 만들었다고?"라는 말을 여러 번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쿠션을 소중하게 안고 있는 내게 다시 말한다. "너는 그런 감성이 있는 애가 아닌데, 정말 네가 만들었다고? 네가 그런 감성이 있다고?"
'좋은 말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라는 속담이 있다. 더더군다나 그렇지 않은 말을 세 번 이상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내가 왜? 나 십자수 놓는 거 좋아했는데. 액자도 만들었고, 그거 하다 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좋아."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이모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 어떤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판단하고 규정해 버린다. 이모에게 나는 똑똑하지만(왜 그런지 모르겠다) 차갑고 감성이 메마른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혈액형도 자주 언급한다. 아니 세상에 A, B, O 이렇게 세 종류의 혈액형만 존재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의 성격이 딱 세 종류라는 말인가? 예전부터 이상했다. 내 주위의 사람들만 보더라도 같은 혈액형이라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이모의 말에 의하면 나는 A형이지만 O형 같다고 한다. A형은 소심해야 하고, 감성적이고, 연약하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러니 자신의 혈액형 성격설에 맞추려면 내가 돌연변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만 해도 그렇다. 그래도 이건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해서 만들기라도 했고, 그 종류도 적어도 3개보다는 많으니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을 '어떻다'라고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타인이 그런 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부모가 자녀에게 '너는 착한 아이야. 공부 잘하는 아이야. 엄마 아빠 말 잘 듣는 아이야.' 같은 듣기 좋은 것 같은 말은 자녀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닌데 왜 엄마나 아빠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 거지? 점점 부담이 과중되면 아이는 그 착한 규정을 포기해 버리기 쉽다. 물론 '너는 왜 이리 게으르니. 너는 정말 운동도 못하는구나. 너는 아빠 혹은 엄마 닮아서 수학 머리가 없구나.' 같은 부정적인 규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난 게으른데 뭐, 해봤자 못하는 거 해서 뭐 해'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는 그 규정을 얽매어서 인생의 새로운 도전들을 회피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 대한 규정은 희망적이어야 한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같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말 대신, 상대를 평가하는 말 대신 '너의 웃는 모습이 나는 참 좋아.', '네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무언가 해 보고 싶어.', '네가 내 옆에 있어서 참 행복해.' 같은 그 사람의 존재, 행동, 모습 그 자체를 기뻐하는 말을 하면 어떨까. 그리고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나를 향해 '오늘도 아침을 너와 함께 시작해서 참 행복해. 너를 사랑해. 너의 있는 그대로를 정말 사랑해.'라고 자꾸 말해 보자.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내가 도대체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나를 향한 규정은 확언이 되고, 그 확언은 내 인생에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