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 Oct 02. 2024

네가 사춘기일 때, 나도 사춘기였나 봐

긍정인간 프로젝트 이전 이야기

엄마 눈에는 언제나 자녀가 부족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이상적인 자녀'의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아이에게 내 아이를 맞추려고 하니 늘 뭔가 부족하다. 이런 것을 고쳐야 하고 저런 것을 바꾸고 싶다. 사춘기가 되어도 내 아이는 바른말을 써야 하고 예의범절을 지켜야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스마트폰 같은 기기에 중독되지 않아야 하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늦잠을 자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와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허용하고 싶지 않다. 부모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말대꾸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야 한다'라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일 년, 이 년이 지나니 아이가 화가 날 때는 내가 쓰지 않는 험한 말을 추임새로 넣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욕'이라고 했지만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춘기의 절정에는 방 문을 닫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어떤 일들을 했다. 문을 잠그는 일은 많이 없었지만 그 안에서 좋아하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아이돌 가수의 안무를 따라 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방문을 닫는 소리, 문을 잠그는 소리에 엄마의 마음이 무너지는 건 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도 그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거나 두드리며 문 열라고 소리 지르지 말자. 아이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자. 큰 문제가 없다면 일반적으로는 방에서 나온다. 그러면 그때 환한 얼굴로 반겨주면 된다. '드디어 나왔네!'라는 말은 필요 없다. 공부해야 할 때, 그런 필요 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아이에겐 소중한 시간이다. 유아기 이후에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은 아이에겐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도 필요하다. 




내 아이는 어른이 되려는 시기에 놓여있었다.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그래서 나의 말에 거의 언제나 의견을 제시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고집을 내려놓지 않았었고 나의 틀에 박힌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했었다. 내 말은 맞고 아이의 말은 틀렸었다. 시험 기간에만 바짝 공부하는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다. 평소에 공부를 해야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하다가 고등학교에 가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아이는 다행히 수업 시간에 충실해서 그랬는지 시험 결과는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은 나는 올백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숨 쉬기도 했다. 등수를 알 수 없는 중학생의 쉬운 시험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늘 불안했다. 가끔 다른 엄마들은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애를 고등학교 때 망칠 셈이냐, 엄마가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강제로 끌고 가서라도 학원에 보내라고 했다. 엄마의 생물학적 나이와는 상관 없이 엄마는 아이의 나이에 따라 성장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중학교 시절, 나도 사춘기를 겪고 있었나 보다. 내 생각은 늘 불안했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이에게도 이랬다 저랬다 하며 뚜렷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엄마들 말에 자주 휘말리기도 했었다. 줏대 없고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하지만 아이의 의견은 확고했다. 학원에 다닐 필요 없다고. 불안정한 가운데 확실한 하나는 내 아이는 학원에 억지로 보낸다고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시험 때를 제외하고 집에선 정말 열심히 놀았다. 관심사가 정말 다양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 재미있어 보이는 건 다 해보고 싶어 했다.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좋아하는 캐릭터나 아이돌의 굿즈들을 열심히 모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이라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건전한 취미이니 조용히 옆에서 봐주려고 노력했다. 관련된 주제로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 열심히 들어줬다. '아 그런 것도 있구나.', '아~나 그거 알아. 그 사람 알아. 이 노래 알아.'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주다 보니 어느덧 아이도 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엄마가 자신의 취미를 이해해 주려고 노력한다는 걸 아이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같은 반 친구들과 친해서 더 즐거웠다고 하는 나의 사랑하는 딸. 지금 가장 공부 양이 많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선행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따라가려다 보니 힘들 때도 있지만 자신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는 본인이 원해서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학 따라가려니 힘들지 않아? 다른 친구들은 몇 바퀴 돌고 왔을 텐데, 널 탓하려고 물어보는 건 아니고... 혹시 중학교 때 선행 안 한 거 후회하지 않아?"

"응.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가장 행복했어. 많은 걸 할 수 있었고 그래서 후회하진 않아. 지금 하면 되는 거지."


물론 아이의 속마음을 정확히 말했는지는 모른다. 완전한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지금 내신 따라잡느라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느라 비교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안다.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아이는 그 행복한 시간이 힘이 되어 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중학교 때부터 했던 아이는 가고 싶은 학과를 찾아가며 최종 결정까지 마친 상태이다. 대학교 커리큘럼을 찾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있는 학교들까지 찾아 놓았다. 그중 몇몇은 내신도 경쟁률도 꽤 높은 학교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욕심 내지 않는다. 아이의 성적을 보고 포기한 건 아니다. 그냥 아이를 믿을 뿐이다. 오히려 아이가 욕심을 낸다. 최선을 다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그 학교들 중에 아이가 갈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진로는 알아서 개척할 수 있는 단단한 아이라고 믿는다. 


나보다 훨씬 나은 내 아이. 내가 15살 때보다, 16살, 17살 때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자신의 삶에 책임질 줄 알고, 생각이 깊은 내 아이에게 내가 더 많이 살았다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내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 너는 적어도 그때의 나보다 훨씬 괜찮은 아이야. 이렇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고마워. 엄마는 참 복도 많다. 너라는 딸을 둬서 참 행복해.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 말해. 함께 이야기 하고, 늘 옆에 있어 줄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려면 끝도 없다. 그 아이들 엄마도 내 아이와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자녀는 없는 법이다.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사랑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이 된다. 그 보석을 하찮은 돌로 바라보면 그렇게 될 것이고, 가치있고 빛나는 보석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