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옥찬 Nov 23. 2023

중년, 좋은 아저씨가 되고 싶다

다음 세대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2018년도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방영을 했다. 그 당시 지인들이 보라고는 했지만 보지 않았다. 드라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무거움이 싫어서 보지 않았다. 당시에는 삶의 스트레스가 많았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드라마를 골라서 좋아했다. <나의 아저씨>가 나온 뒤 한참 후인 2023년이 되어서 아저씨를 만났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포스터

<나의 아저씨> 드라마 소개글을 보면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한다. 어느새 삶의 무게를 버틴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중년의 나이까지 살다 보면, 정확히는 중년까지 죽지 않고 살아낸 사람이라면, 인생 여정의 삶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 하나 순탄한 길만 걸어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발달단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예로 드는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가 있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에 따르면 중년은 생산성과 침체감의 단계에 속한다. 생산성은 무엇인가 생산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결혼을 했다면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 자체가 생산하는 일이다. 중년은 다음 세대를 생산하고 가치를 전수하는 생산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침체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AI로 만든 이미지

중년의 시기에 침체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과도한 자기 몰두에 빠진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다. 자기 생각만 옳기 때문에 타인과 대화가 어려운 사람이 된다. 소위 다음 세대가 꼰대 중의 꼰대인 상꼰대라고 할 사람이 될 수 있다. 다음 세대에게 적절한 꼰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상꼰대는 사고의 유연성과 개방성이 현저히 낮아져서 다음 세대와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중년의 생산성인 다음 세대에게 가치의 전수를 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면 다음 세대와 소통의 단절로 허무하고 공허해지면서 침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좋은 아저씨가 되고 싶어졌다. 좋은 아저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좋은 어른이라는 말이 맞겠다. 중년이면 어른이다. 그런데 한쪽 마음은 나이가 드는 것을 거스르면서 청년이고 싶어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중년을  다양한 말로 표현한다. 생물학적인 나이를 청년의 시기에 가깝게 하고 싶어서인지 말이다. 그런데 심리적으로도 청년처럼 살지는 한다. 중년은 어른이니까 말이다. 중년이 청년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미성숙한 것이다.     

AI로 만든 이미지

중년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산성이라는 것으로 보면,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다.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금물이다.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감정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금물이다.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 경험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인간에 대한, 인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 나오는 아저씨들의 찌질함이 나에게 있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자.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원하는 대로 잘 안 되는 인생들이다. 나도 그렇다. 그럼에도 다음 세대를 위로하고 응원할 줄 아는 좋은 아저씨가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년기 이후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