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자기 집착
최근에 이사를 했다. 현재 사는 집과 새롭게 이사 가는 집의 구조가 다르다. 생각해 보면 이사를 여러 번 해봤지만 집 구조가 같은 경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사를 한다는 것이 짐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재배치를 해야 하는 고단함이 컸다. 아파트의 평수가 같더라도 구조가 다르고, 수납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이사의 고단함이 있다. 그런데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사를 여러 번 했지만 이번에는 이사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이사를 할 때면 남들 하듯이 이삿짐센터를 찾아서 포장이사를 한다. 이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포장이사를 아무리 잘해줘도 물건의 배치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기혼이고 중년의 나이에 아이들이 있는 경우에는 부부의 물건 외에도 아이들의 물건들이 상당히 늘어나있다.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집 안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재배치하는 고생을 힘들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번 이사를 할 때는 물건의 재배치도 힘들고, 쓰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고 쌓여 있는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정했다. 가능한 한 살림을 가볍게 하고 싶었다. 유목민처럼,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소풍 하듯이 가벼이 살고 싶어졌다.
결혼을 하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여러 번 이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사용을 하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이전에는 왠지 모르게 버리기 아깝고 괜스레 의미 있어 보이는 물건들이었는데, 삶을 가볍게 하기로 작정을 해서인지 버리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소유만 했지 제대로 쓰지도 않는 물건들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한 물건들이었는데 오히려 내 삶을 무겁고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치우면서 알게 되었다.
심리적으로도 불혹 이후 중년이 되면 버려야 하는 마음이 있다. 특히, 자기중심적인 자기 집착의 마음이다. 자기중심적인 자기 집착은 삶의 모든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을 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타인의 삶은 안중에 없게 된다. 심리학자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를 보면 중년은 생산성의 단계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성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사회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널리 퍼진 불안감은 자기 자신의 안위에만 집착하게 하는 것 같다. 중년에는 노후 준비라는 목적으로 자산 관리와 건강 관리 등으로 자기중심적인 자기 집착을 하기 쉽다.
그런데 심리발달적으로 중년의 시기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없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주고 격려하지 못한다면 침체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중년의 시기에 경험하는 우울은 삶의 에너지가 세상으로 향하지 못하는 침체기의 경험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중년의 삶에 대한 실존적인 책임감을 저버린 결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중년의 시기에 자기 자신만을 위한 협소한 시각의 삶이 결코 중년에게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등장하는 이야기의 스쿠루지를 보더라도 그렇다. 중년의 자기중심적 자기 집착은 결국 인색함으로 드러난다.
중년의 시기는 노년기를 바라보지만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을 바라보는 시기이다. 중년의 시기를 산다고 반드시 노년기를 살 것이라는 인생의 보증수표는 없으니까 말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내용처럼 소풍 하듯이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중년의 시기에는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가벼이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소풍이 끝나는 날 귀천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것 같다. 무엇보다 자기중심적 자기 집착의 마음을 버리는 것인 중년기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