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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은 Apr 11. 2024

여러 번의 목련

같은 소재를 쓰는 일

봄이니 목련이 피는 것이 당연하고, 목련이 피었으면 목련 이야기를 옮겨야 하는 것이 나의 숙제이다. '오늘 아침'으로 옮겨온 것이 2019년 겨울부터니까, 00년, 01년, 02년, 03년, 그리고 04년에.. 목련을 썼다. 어떤 해에는 한 번이 아닌, 두어 번 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후회한다. 이렇게 오래 있을 줄 알았으면 1년에 한 번만 쓸 걸 그랬다.

겨울부터 봄까지 목련을 관찰하곤 한다. 한겨울엔 도톰한 털옷을 입고 그 속에서 꽃이 될 씨앗, 잎이 될 씨앗, 품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깍지를 떨어뜨리며 뽀얗고 보드라운 꽃잎을 보여줄 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직 활짝 피기 전 잎을 모으고 있는 모습은 잔을 받치고 있는 등불 같기도 했다.  꽃잎이 다 벌어지면 그윽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데 두툼하면서도 우아한 향기가 목련스럽다. 밤에 산책을 할 때면 환하게 비추는 것이 아름다워서 밤의 목련 이야기도 썼다. 여름엔 마당에 떨어져 있는 목련 열매를 보고 그 모습이 괴상하면서도 신비로워서 여름의 목련 이야기도 썼다.

얼마 전 친정에서 목련을 꺾어올 때, 아, 숙제를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올해는 어떤 얘길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활짝 피어나면서 툭. 툭. 뱉어놓은 깍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벗어둔 겨울옷 같았다. 포근한 봄에 겨워 겨울 외투 정신없이 벗어놓은 것으로 올 해 목련도 무사히 지나갔다. #봄의일기 #목련



아무렇게나

벗어둔 겨울 코트가

바닥을 뒹군다.


지난겨울

바람이 매서운 계절엔

평생토록 벗지 않을 것처럼

꽁꽁 그 속에 숨어놓고는


햇살의 온도가 올라가자

조금씩 느슨하게

옷깃을 풀더니


급기야 이제는

‘더는 필요 없어!’


아주 귀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미련 없이 던져버린 옷이다.



바닥에 떨어진

옷 중 하나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본다.


생각보다 가볍고

또 생각보다 보들보들하다.


꽤 두툼한 털이

빈틈없이 솟았는데


누군가 정성껏 빗질이라도 한 것처럼

털이 한 방향으로

매끈하게 정돈돼 있다.


지난겨울 내내

하얗게 고운 꽃잎을 품어낸

신비로운 목련의 깍지,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얼마나 봄을 기다렸을까,


이제는 쓰임을 다하고

땅으로 툭, 떨어져 버린

작은 털옷 조각이 신비롭고 아름다워

한참을 보았다.


평범한 날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나서는 <평소의 행복>

오늘은 [목련꽃그늘아래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

이어지는 노래

태연의 [사계]



#평소의행복 #오늘아침정지영입니다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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