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7일간의 깨달음
코로나 확진자만 하루에 몇십만 명이 나오는 상황에서 왜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안일하게 생각한 탓에 하루아침에 목이 붓고 누가 칼을 물린 것처럼 통증이 계속되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머리가 울렸고 온 몸에는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어느 날 아침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코로나에 걸렸던 후기를 보고 있자면 대부분이 심한 몸살 같았다고 했는데 나는 다행히도 3차까지 백신 접종을 했기 때문인지 후기만큼 아팠는데 그럼에도 후유증이 꽤 오래갔다. 완치 후에도 목에서는 계속해서 가래가 끓었고 지하철을 탈 수 없을 정도로 기침 소리가 크게 나서 누가 보면 코로나 환자였던 사실을 광고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그런데 몸에 남은 흔적보다 마음에 남은 흔적이 더 컸다. 코로나 증상이 예상보다는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7일간의 격리 기간 동안 하루 이틀은 정말 크게 아파서 백신 접종을 안 했더라면 진짜 죽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실감한 순간도 있었다. 죽음의 두려움이 어느 순간 마음을 잠식했었다.
격리 기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방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데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곳이 골프장으로, 다중 이용시설이다 보니 가족 간의 접촉도 최소한으로 해야 했다. 그래서 화장실마저도 하루에 한두 번씩 정말 가지 않으면 안 되겠는 순간에 몰아서 갔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내 방이 어느 순간 감옥처럼 느껴졌다. 7일이라는 시간 동안 회사에 휴가를 내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일을 했다.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일을 끝내고 나서 저녁에는 영화를 몰아서 봤다. 그중에는 한 달, 육 개월, 일 년처럼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이유도 모른 채 격리당하거나 납치당해서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의 스토리가 담긴 영화도 있었는데 보면서 나의 7일은 아무것도 아니네 하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7일은 길었다.
격리 기간 중 가장 아팠던 3일째 저녁 이후 4일 차부터 몸은 후유증을 빼곤 정상인 같았지만 계속해서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100% J형답게 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고 격리 기간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부터 올해 내가 이뤄야 하는 일,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뭐랄까 서른을 맞이해서 진작에 했어야 할 인생 정리라는 것을 했다. 그러면서 올해 무엇에 가장 크게 집중하고 싶은지를 적어봤는데 역시나 글이었다.
그동안 쉬었던 독립출판 준비도, 브런치 에세이 쓰기도, 전자책 출판도 모두 글쓰기의 연장선상이었다. 격리 기간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기똥찬 글을 써서 교수님들을 깜짝 놀라게 해 드려야지 하는 생각도 했는데 역시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교수님들, 매주 엄청난 피드백을 주시지만 상처받지 않고 계속해서 쓰겠습니다.)
격리가 끝난 날 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렸던 환자로서 깨달은 것들을 한번 글로 남겨보라고 했다. 큰 병도 아니고 격리 기간도 사실 그리 길지 않았는데 쓸 말이 있을까 싶었는데 또 막상 써보니 역시 투마치토커답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2020년부터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하루가 매일 똑같은 순간의 반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비몽사몽 한 상태로 시원하게 세수 한번 하고선 책상 앞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했다. 간간히 식사 시간에는 일어나긴 했지만 냉동 도시락을 3분만 돌리면 식사 준비는 끝나기 때문에 노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또 일을 하고 저녁에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고 때로는 대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으며 남는 시간에는 책을 보거나 글을 썼다. 주말에도 별다른 일 없이 친구들을 만나거나 공부를 했다.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따분했다. 해외여행을 2년째 가지 못해서인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서인지 일상이 너무 평범해 보였고 뭔가 신선하고도 자극적인 일을 찾아 헤맸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나중으로 미뤘었다.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평범했던 일상이 실은 굉장히 대단하고 값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그 순간, 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는 그 순간, 학교에 나가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글을 구상하는 그 순간, 팀원들과 회의가 끝나고 회사 앞 카페에서 근황을 나누는 그 순간. 순간순간이 모두 즐거움이었음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었다면 나는 망각하면서 지냈을 것이다.
만성비염을 제외하곤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건강 체질이라고 자부했던 것이 부끄러워질 만큼 어느 순간 코로나라는 병에 딱 걸리고 말았다. 예전에는 젊으니깐 건강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젊으니깐 그래서 당연히 건강할 테니깐 드라마를 몰아 보느라 밤을 새도 괜찮고 하루쯤 헬스장에 가지 않고 운동을 건너뛰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괜찮은 것은 없었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또 갑자기 죽을 수 있음을 이번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가장 아팠던 2-3일 차에 침대에 계속 누워있으면서 이러다 갑자기 증상이 심해져서 폐렴에 걸리거나 고열이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왜 우리는 언제든 건강을 잃을 수 있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 속에서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사는 것일까.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오늘의 행복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없음을 정말 절실하게 깨달았다. 코로나 완치 이후에 요즘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잘 챙겨 먹고 있으며 잠을 충분히 자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에 걸림으로 인해 나 자신을 챙길 수 있는 존재는 나 밖에 없음을 깨닫고 늘 건강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늘 성장에 목말라있었다. 매년 연초에 계획을 세울 때마다 작년에 결국 달성하지 못했던 목표를 늘어놓으며 올해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목표 아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세부 실행 과제를 정했었다. 처음에는 성인으로서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했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결국 목표를 달성해내지 못한 내가 한심스럽고 한해를 보람 있게 보내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남았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옭아맸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리고 나자 이렇게 자책했던 일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현재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내 자산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했었다.
자가격리 기간 중에 동기부여와 관련된 영상들을 보다가 우연히 박막례 할머니의 '할머니가 처음 말해주는 인생의 비밀'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속에서 가장 와닿았던 말은 '실패는 했다는 것의 증거다'라는 이야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매년 결국 목표를 달성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들 중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자책하는 대신 그 일을 해봤던 사실에 감사하며 스스로를 응원했어야 했었다.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6HExwvaNWI]
결국 실패로 남았지만 '인생에서 나쁜 것도 소리 없이 오지만 좋은 것은 더 소리 없이 올 수도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아무런 경고 없이 코로나에 걸려 한동안 고생한 것처럼 언젠가는 내게 좋은 기회도 갑자기 찾아 올 수도 있고 결국 실패로 끝난 내 경험들이 그러한 기회를 잡는 데 생각지도 못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겠지. 성공하지 못하면 뭐 어때 실패라는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면 되겠지' 코로나로 인해 나는 성공해야 되고 성장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코로나 완치 이후 내 삶이 그 전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뻥일 것이다. 하지만 점점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요즘에 나는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무엇이든 실수 하나 없이 해야 한다는 중압감, 실패했거나 실패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 느껴지는 두려움과 자책감을 내려놓으면서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관심 있어했던 것들을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지 않고 하나씩 해보고 있다. 반면에 싫어했으나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했던 것들에선 점점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생의 행복이 뭐 별게 있을까.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행복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코로나가 내게 남긴 최고의 아웃풋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일이다. 언젠가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코로나가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