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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Feb 09. 2020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인턴 시절 만났던 최악의 선배에게 배우다

가끔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


성격이 좋지 않아도 본인은 일을 잘하니 그걸로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어디서든 환영받는 존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일을 잘하긴 개뿔, 사람부터 되세요!

인턴 시절 늘 한 사람만 보면 이 말이 떠올랐었다


23살에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기 전, 경험도 쌓고 부족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여러 홍보대행사에 인턴을 지원했었다. 그러다가 한 홍보대행사에서 일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학생 티도 벗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업무보다 더 트렌디하고 참신함을 요구하는 그 자리에 나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경품 포장부터, 포토샵으로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까지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던 것 같다.


당시 팀장님, 같은 팀 선배들, 사수는 정말 좋은 분들이셨다


어린 눈에도 이 사람들이 나를 단순히 아르바이트생이나 어린애 정도로 여기지 않는구나 싶었다. 정말 나를 동료로 생각해주셨기에 인턴계약이 끝나던 날도, 취업 후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간 날도 나를 따스하게 맞아주셨겠지.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라면 관심사도 다르고, 나이도 어려서 그분들의 대화에 잘 끼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회사에서 원하는 것만큼 결과물을 잘 뽑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위축되곤 해서 그분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팀 모든 분들이 좋았었다. 지금 다시 가서 일하라고 하면 정말 잘 해내려고 노력할 텐데 지나고 보니 너무나 아쉬웠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최악의 선배였던 그 사람을 만났다


지금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까, 왜 그때 다른 팀이었던 나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했을까 아직도 의문이 든다. 온라인 파트 쪽에서 일하던 나와 달리 언론 파트에서 일하던 그 사람은 정말이지 내가 홍보대행사에서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인턴생활을 시작해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나는 인턴이라면 다른 팀원들보다 일찍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날도 어김없이 팀원들보다 약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 전날 다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팀원분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모두들 업무를 시작했다. 9시를 넘었을 무렵 우리 팀 쪽으로 갑자기 그 최악의 선배가 나타났다. 우리 팀도 아니고 언론 파트에서 일하는 분이니, 내게 볼일 있어 온 것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오였다.


그녀는 얼어붙은 얼굴로 쾅 소리가 날만큼 있는 힘껏 신문 뭉텅이를 내 책상 위로 던졌다


덕분에 내 컴퓨터 위로 신문이 소복이 쌓였었고, 책상 위에 있던 서류와 필기구는 모두 어지럽게 흩어져버렸다. 너무 큰 소리가 나, 작은 사무실 안에서 시간이 멈춘 듯 모두 내게 집중했고 나는 순간 너무 당황해 눈물이 났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

일찍 출근했으면 신문을 갖고 올라와야지, 왜 맨날 우리 팀 인턴만 고생해야 해!


어안이 벙벙했고,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나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해도 못할 말들을 내뱉더니 씩씩거리면서 화를 내곤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우리 회사는 인턴들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어야 했는데 언론 파트 인턴이 그날 늦잠을 잤는지 어쨌는지 구독하는 신문을 제때에 갖고 올라오지 못했고 팀 선배들에게 전달이 늦어졌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 모니터링이 늦어져 기분이 나빴던 그녀는 온라인 파트에 인턴이 가장 먼저 출근했음에도 신문을 갖고 올라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의 감정을 신문과 함께 패대기쳤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의 부서는 온라인 파트였으므로, 회사 홈페이지나 sns만 관리하면 되었었고, 회사에서 구독하는 신문이 어디 있는지 조차도 인수인계받거나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내 일이 아니니깐 그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겠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했었다.


회사 선배의 부당한 행동에도, 회사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다


내가 인턴이라 그랬는지, 그 선배가 일을 잘한다고 소문났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여하튼 아무도 그때의 일을 입에 올리거나 그 선배에게 경고나 경질을 준다거나 하는 등의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에 나는 그녀만 마주치면 겁이 나 눈도 마주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회사에서 단체 활동으로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녀 곁에 서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의 그런 겁먹은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를 향한 눈빛에는 늘 무시가 담겨 있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사회를 처음 경험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법 조차 몰랐기 때문에, 선배들에게도 이런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그렇게 야단치고 나서 그 일을 완전히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업무 역량은 뛰어난데 성격이 좋지 않아 많은 후배들이 회사에서 떠나게끔 만들었었다는 그녀의 일화를 들으며 이런 사람을 아직도 데리고 있는 회사는 좋은 회사가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약기간이 종료된 후,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인턴생활을 몇 번 더 겪었다


그러던 중 같은 홍보대행사에서 일했던 지인으로부터 그녀가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지만 퇴사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도 통쾌했지만, 사람은 어디 안 변한다고 또 어디선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을 그녀가 떠올랐다. 제발 부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말길.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최악의 상사는 일은 잘했지만, 글쎄. 누가 과연 그 사람과 일을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상사들은 좋아했으려나.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자신의 역할도 잘 해내야 하고 다른 이들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 길은 참 멀고, 그런 분을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부터라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길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단순히 일을 잘하기만 하는 사람은 이제 더이상 환영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옆에 동료가 적어도 나때문에 회사 오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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