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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Mar 09. 2020

버티기 힘든 날에는 퇴근길 두 손이 무거워진다.

퇴근길 힘듦을 짊어질 때

예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가끔 퇴근길에 가족들 먹일 야식을 사 오곤 했는데, 본인이 커서 회사를 다녀보니 알겠더라고. 아버지가 사다주신 야식에 행복했던 날들이 사실은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날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라고. 버티기 힘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행복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었음을 본인이 일해보니 알겠다는 글이었다.


공감 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회사에서 업무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가끔 화장실 다녀오기도 바쁜 날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봤을 때  오후 6시가 되었다면 퇴근할 수 없는 현실이 마음을 아래로 조용히 내동댕이 친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내일의 '내'가 숨 돌릴 시간을 주고 싶어 마음을 다잡고 모니터를 응시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7시, 8시, 9시. 다른 팀원들은 퇴근했는데, 왜 아직까지 남아있냐고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저마다의 일이 있겠지만, 유독 자질구레한 일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편인 것 같네요. 호호호] 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어색하게 [하하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요.] 할 것인지 나는 대답할 때마다 갈림길에 선다.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전자가 그들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후자를 선택한다.


모든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사무실을 나서는 밤 10시


이미 하늘은 저물어 해가 보이지 않고 달이 밝게 빛나고 있을 무렵 회사 밖을 나선다. 집이 먼 탓에 더 늦게까지 일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한편, 마음속엔 아직도 다하지 못한 일들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오랜 시간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어깨엔 돌덩이가 앉은 건지,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어도 모자랄 판에 머리는 번뇌와 고민으로 잠식되어간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이런 때에 나는 한 가지 중요한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집으로 가는 길, 역 앞에 있는 도넛 가게에 들린다


그러고는 나는 달아서 잘 먹지도 않는, 보기만 해도 달콤해지는 도넛을 여러 개 골라 계산대에 선다. 결제를 하고 나오는 발걸음은 들어갈 때보다 한결 가벼워져있다. 집에 도착하면 부모님 앞에서 [연기]를 시작한다. 야근하느라 무척이나 배고픈 사람처럼 [피곤해서 달콤한 것들 좀 사 왔어]라는 말과 함께 부모님께도 도넛을 권한다. 평소 단것을 좋아하는 부모님은 이런 내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이윽고 따뜻한 우유와 함께 부엌 식탁에 오순도순 세 식구가 모인다.


우유를 한 모금 마실 때, 온몸의 피로가 사르르 녹고 '아 이제야 살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도넛을 아주 맛있게 먹는 척, 그러나 먹지 않으면서 대신에 부모님과 그날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날의 내가 끝마치고 오지 못한 일들 혹은 일을 하면서 느꼈던 나의 감정들을 풀고 나면 어느새 이야기 끝에 다다른다. 이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야기를 하며 너무 내 [힘듦]을 드러내지 않는 것. 부모님의 마음에 상처입지 않고, 사회초년생이면 누구나 힘든데 오늘 나의 힘듦은 딱 요정도 였어 라며 아주 가볍게 말하는 것이 포인트다.


'내일도 버틸 수 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자리에 누우며 의식을 마무리한다


앞으로 약 30~40년 더 일한다는 가정하에 과연 이런 의식을 몇 백번, 몇 천 번 더 치르게 될까. 알 수가 없다.

부모님은 어떻게 견디셨을까. 앞날을 생각하면 아찔함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안타까움만 늘어간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한평생 일만 하셨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가장으로 사느라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늘을 돌아볼 틈도 없이 내일을 위해 사셨다. 그런 부모님이 마흔 살 무렵 만나 낳은 아이가 나였다. 부족한 부분은 사랑으로 채우며 집안이 힘들 때도 누구 하나 내게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부모님은 살아오셨다.


버티기 힘든 날에는 두 손이 무거워졌던 퇴근길을 이제 내가 걷고 있다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할까. 어떤 물음에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은 알고 있다. 오늘이 힘들었다고 도망가지 않고, 내일이 힘들 것이라고 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다만 내일은 의식을 치르지 않기를 조용히 그리고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빌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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