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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Aug 09. 2020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날

맥주+떡볶이=진리

상처받았다고 해서 주저앉지 않고 서둘러 극복해내는 것.
그것이 늘 나를 나답게 해주는 일인 것 같다. 


맥주 한 잔이 간절히 생각나는 밤이었다


털어내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가 마음을 괴롭히는 탓에 잠이 쉬이 오지 않는 그런 밤.


열두 시가 넘어갈 무렵


냉수로 마음을 추스르고 잠이나 청하자는 생각으로 냉장고를 열자마자, 흘러나온 냉기가 두 뺨을 사정없이 갈겨대는 탓에 정신이 번쩍 깼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오후에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품을수록 회사가 나를 점점 집어삼키는 것 같이 느껴지던 때였다. 완벽한 것이란 없는데, 또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인데 그럼에도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마치 내 몸이 삼각형, 사각형이 된마냥 점점 뾰족해지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그 날의 일은 내 뾰족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신입 때라 요령이 부족한 탓에 일이 과하게 몰려 제 시간 안에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하고 있는 내 어깨너머로 지나가는 상사 1이 한 말이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능력이 부족해서 야근하는 건 아니지?

본인 딴에는 농담조로 기분 나쁜 웃음을 흘기며 지나간 그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살인충동이 느껴졌다.


그나마 고등교육을 받으며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학습한 덕분에 살인을 면할 수 있었다. 회사에 계속 남아있으면 이 더럽고 거지 같은 기분이 나를 따라올 것만 같아 일감을 가지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누구라도 만나서 생채기가 난 내 마음을 좀 봐주시라고


상대방 턱 밑까지 상처 난 내 마음을 펼쳐 보이고 싶은데, 일은 다 마치지 못했지, 이런 날에도 어김없이 내일 출근해야지 하는 생각에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오자마자 일을 마무리짓고 잠자리에 누웠던 게 30분 전의 일


냉기로 정신을 번쩍 깨운 눈 앞에 맥주 한 캔과 지난주에 먹다 남은 떡과 소시지가 있었다. 떡꼬치를 먹을까 하다가 국물이 자작자작한 떡볶이를 한입 베어 물며 맥주로 마음을 달래고 싶어 졌다.


물이 끓어오를 때, 상사 1의 말이 문득 떠올라 그의 머리를 댕강 자르는 기분으로 떡볶이와 소시지를 큼지막하게 잘랐다. 감정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에 야채도 어묵도 듬성듬성 크게 잘라 넣었다.

어느새 1인분을 넘어 2.5인분이 되어 있는 떡볶이를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땄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톡 튀기는 탄산이 생명수가 되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 갔고, 이윽고 남아있던 감정의 찌꺼기를 녹여버렸다. 


접시에 옮겨 담을 새도 없이 떡볶이가 담긴 프라이팬에 맥주 한 캔,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찾아 틀고 나니 비로소 집에 왔음을, 어떤 꾸밈도 노력도 필요 없는 "내가 나일수 있는 공간에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 나쁜 말을 들었던 귀는 영화 소리로 씻어내고,

기분 나쁜 말에도 받아치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던 입은 떡볶이로 달래주고, 

기분 나쁜 말에 위로가 필요했던 내 영혼에겐 맥주 한잔이라는 명약을 선사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오늘의 밤, 이 밤의 잊지 못할 떡볶이와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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