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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Aug 23. 2020

채용전형에 마흔여덟 번 떨어진 이후의 이야기

버티는 게 어쩌면 이기는 법

“ 저 같은 사람도 취업할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말이지만, 습관처럼 이 말을 내뱉던 순간이 있었다. 취준생이던 시절 채용전형에서 마흔여덟 번째 떨어졌을 때가 바로 그러한 순간이었다.


세상이 나를 몰라본다는 심정으로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끝없이 자존감을 아래로 끄집어 내렸었다. 당시에 자취를 하고 있었다면 세상과 단절한 채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덕분에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다.


2017년 취준생이던 시절 내 용돈은 50만 원이었다


그 돈으로 취업 인강도 끊고, 인적성 문제집도 사고, 면접스터디도 준비하고 정장도 살 수 있었다. 남은 돈으론 회사 채용전형에서 떨어질 때마다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와 부모님이 잠든 새벽에 노래를 들으며 몰래 울면서 마시고는 했었다.


채용전형에서 서른 번째 떨어졌을 때였나


지금은 생각도 잘 안나는 사소한 문제로 아빠와 언쟁이 오고 갔었다. 논쟁의 끝무렵, 아빠에게 ‘네가 그래서 취업이 되겠냐’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듣자마자 뭔가가 마음을 강하게 쾅! 하고 어퍼컷을 날린 것 같았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는 기분은 난생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큼은 취업하지 못한 것이 어떤 죄보다도 무겁고, 어떤 행동보다도 더 불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한동안 아빠와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당시 연거푸 채용전형에서 떨어져 자격지심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상대방 말을 내 마음대로 왜곡해서 해석하고 이해했던 것 같다. 아빠도 어쩌면 저 말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뉘앙스가 내가 느낀 거와 정반대의 그러니깐, 걱정하는 말투였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자존감이 너덜너덜한 걸레짝이 되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나는 서른 번째에서 마흔여덟 번째 채용전형 떨어질 때까지 모든 과정과 결과를 가족들 포함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종 면접을 가는 길에도 가족들에겐 학교에서 모의 면접 간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괜히 부모님이 헛된 기대를 품지 않도록, 또 나 스스로가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기제였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건 채용전형에 마흔여덟 번 떨어질 때까지 모든 결과는 나만 알 수 있었다


홀로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나날들이었다. 누구와도 이 감정을 나눌 수 없었다. 슬픔도 나누면 반이 된다던데 나누지 못한 내 슬픔은 마음에 짐처럼 차곡차곡 쌓여만 갔었다.


당시 모든 채용전형 과정과 결과를 기록했던 엑셀 파일

지원했던 모든 채용전형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했던 엑셀 파일에서, 마흔여덟 번째 실패로 저장된 것은 어느 모 식품회사의 영업관리 직무의 인적성 시험이었다. 특이하게도 그 회사의 인적성에는 회사의 연혁, 역사 등에 대한 정보와 현재 주력으로 판매하는 제품, 경쟁사 제품에 대한 질문이 많았었다. 아직도 그 회사 제품은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나란 사람이 속 좁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흔여덟 번째 채용전형에서 탈락하고 나니 상반기에 지원할 수 있는 곳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었다


취준 하던 시절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중견기업, 소기업, 스타트업까지 지원했었고, 정규직이 아니어도 체험형 인턴부터 정규직 전환형 인턴, 계약직까지 다양한 근무형태에 도전했었다. 매일 자소서 쓰는 게 일이었고, 갑작스럽게 인적성이나 면접을 볼 수 있음으로 모든 스케줄은 비워놓고 살았었다.


그럼에도 마흔여덟 번 떨어졌다


취준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마음으로 하반기까지 준비해야 하나 겁이 났었다. 마흔여덟 번째 떨어졌음을 알리는 문자를 받았을 때, ‘귀하에게 죄송한 말씀드리며’로 시작하는 그 문구를 읽을 수가 없어 한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이불에 파묻혀 통곡했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인적성에 붙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들어간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마지막 남은 공채 소식을 알게 되었고, 이번 상반기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나를 보여주자는 심정으로 지원서를 냈었다. 그것이 나의 마흔아홉 번째 도전이었고, 첫 번째로 합격한 곳이자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다.


출처 : 뉴욕에서 직접 찍었던 사진

가끔 취업을 못하고 있어 속상해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첫째는, 취업이 되지 않는 건 너의 탓이 아니고 세상의 탓이라고 생각하라고.

둘째는, 왜냐하면 너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깐. 

셋째는, 계속 떨어져서 절망감이 들 때면 채용전형에서 마흔여덟 번 떨어진 나를 떠올리라고.


마흔아홉 번 도전 끝에 회사에 붙어서 지금은 밥값을 하고 있으니,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면 언젠가 너도 밥값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이다. 우린 모두 다 할 수 있다. 아직 그때가 오지 않은 것뿐이다. 그러니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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