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험난했던 호치민 인사대 어학당 가는 길
베트남에 왔을 때, 나는 14살, 오빠는 16살이었다.
베트남에 왔으면 베트남어를 해야지!
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덕에 엄마, 오빠와 나는 호치민 인문사회과학 대학교의 어학당에 다녔다.
호치민 인문사회과학 대학교는 줄여서 호치민 인사대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많은 한국인, 외국인들이 어학당을 통해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 우리는 아주 초급 반부터 들어가서 차근차근 수업을 들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인사대가 위치한 1군까지는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우리는 용감하게도 버스를 타고 다녔다. 용감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 당시 베트남의 대중교통은 버스가 유일했는데 강한 자들만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 방법은 없었으며, 내려 쬐는 땡볕과 더위를 버티며 기다려야 한다. 버스 정류장 또한 조촐하게 표지판 하나만 세워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온전히 정차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뛰어 올라타야 했다. 가끔은 인도에서 떨어진 곳에서 문을 열어줘서,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알아서 잘 피해 내려야 했다.
그렇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노인 공경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디폴트로 장착된 덕목인 것처럼 어르신들이 타실 때는 달랐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이 짐을 한 보따리 들고 버스에 올라타실 때는 버스 안내원이 내려가 짐을 먼저 들어 올려드리고, 청년들은 바로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자리에 온전히 앉으실 때까지, 완전히 내리실 때까지 버스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이런 부분이 내가 베트남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버스 안내양'이 있던 한국과는 다르게 베트남의 버스 안내원은 남녀 성비가 비슷했다. 손에는 두툼한 잔돈 뭉치와 한 장씩 끊어주는 티켓이 들려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 버스 안내원이 티켓을 끊어주러 온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17년 전쯤 버스표는 3천동 정도였다. 한국 돈으로 200원이 안 되는 돈이다. 여기서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한 달 동안 사용 가능한 월간 버스표를 미리 구매하는 것이다.
월간 버스표는 벤탄 버스터미널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 한 번은 와본 사람이라면 아는 벤탄시장 (Cho Ben Thanh) 그 맞은편 로터리에 있었다. (지금은 더 체계적인 버스 터미널로 탈바꿈했다.)
우리는 월간 버스표를 사기 위해 벤탄 버스 터미널에 갔다.
트럭 버스란, 지금은 보기 어려운 지붕이 달린 트럭을 개조한 버스다. 트럭 짐 칸이었던 곳은 지붕이 있고, 양옆으로 길게 의자가 붙어있으며, 내리고 탈 수 있게 뒤가 뚫려있다. 만약 도로 위에서 그 버스를 만나게 되면, 뒷칸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어색한 눈 맞춤을 피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저것 만큼을 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타고 다녔던 버스는 수입된 것처럼 보이는, 한국어가 여기저기 띄엄띄엄 붙여진 한국 중고 시내버스였다. 버스 내부 컨디션도 복불복이어서, 주로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고 달리거나, 곳곳의 의자가 온전하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버스 안에서 더위와 함께 외국인 가족에게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아내며 등하교하였다. 체력적으로는 참 힘들었지만, 나는 전자사전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창밖의 낯선 풍경을 바라보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은 우리 가족이 베트남을 더 가까이에서 온전히 느끼고 알아갈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지금 현재 베트남의 버스는 쾌적하고 더 안전하다. 한 번쯤은 도전해 보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