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의 춤, 음악과 함께
에르미타주 구관은 겨울궁전으로서 제국주의 화려한 박물관에 가깝다.
대부분 미술에 관심 없으면 겨울궁전만 보고 가는데 에르미타주의 정수는 신관(General Staff Building)에 있다.
참모부 빌딩으로 관청사로 쓰이던 곳을 에르미타주 신관으로 바꾸어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3층의 독일 미술을 만나고 나서 4층의 피카소의 방을 나오면 잠시 복도가 이어진다.
큐비즘이 해체해 놓은 세계의 파편들을 아직 마음속에서 추스르기도 전에, 복도 끝에서 전혀 다른 온도의 빛이 새어 나온다.
피카소가 형태를 무너뜨렸다면, 저 빛은 색채를 터뜨린 누군가의 것이다.
4층은 이렇게 생겼다. 402호부터 시작해 ㄷ자로 길게 이어지며 파란색으로 표기된 갤러리 전체가 세르게이 슈킨과 모로조프 형제 기념 갤러리다. 그럼 두 사람이 누구길래 갤러리 이름까지 지워졌는지 살펴보려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아시다시피 대영박물관은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통해 수집하였고 프랑스의 루브르도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전쟁 등으로 얻은 작품이 많다.
반면, 에르미타주는 러시아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예카테리나 2세가 베를린 상인으로부터 네덜란드·플랑드르 회화 대형 컬렉션을 구입하며 시작되었고 이후로도 제국 황제가 정당하게 돈을 주고 유럽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여가면서 박물관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두 러시아 수집가들의 안목으로 파리에서 건너온 프랑스 근현대 컬렉션이 이 층에 집결해 있다.
그래서 고흐, 고갱, 세잔, 모네 등 유럽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전시하면 인기가 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층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이미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마티스의 방.
에르미타주에 오기 전부터 꼭 보고 싶은 작품 목록이 있었다. 그 목록에서 가장 위에 있던 것이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이였고 그다음이 앙리 마티스였다.
도판으로 수십 번 보았던 그림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다를까 그 궁금증이 계단을 오르는 내내 나를 밀어 올렸다.
방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나왔다. 당혹감인지 환희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웃음.
생각보다 역시 크구나, 색이 이렇게 대담할 수 있구나. 진짜 이렇게 맨얼굴로 달려들 수 있구나.
<Dance, Henri Matisse, 1910>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한 곳으로 끌려간다. 〈춤(Dance, 또는 Dance II, 1910〉이다.
다섯 명의 인물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배경은 딱 두 가지뿐이다.
하늘의 코발트블루와 대지의 짙은 초록.
인물들은 붉은 살색의 윤곽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얼굴도 없고, 옷도 없고, 세부 묘사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움직임의 리듬과 세 가지 색의 팽팽한 긴장뿐이다.
처음 보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래 보고 있으면 그 단순함이 점점 커진다.
마티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춤이 느끼게 해주는 것을 그렸다." 그 말이 정확하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춤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시적인 에너지가 몸속으로 직접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일회화관에서 만났던 프란츠 폰 슈투크의 작품에서 만난 원시성과 에너지가 어둡고 심각했다면 마티스의 춤은 밝고 신난다.
인류가 처음 불 주위에서 원을 그리며 돌았을 때의 그 감각 — 기쁨인지 공포인지 모를 뜨거운 진동.
둥글게 손을 잡고 빠르게 돌던 그 춤꾼들의 에너지 — 그것이 이 거칠고 원초적인 화면에
세 가지 색으로, 다섯 개의 선으로 집어냈다.
이 그림과 관련된 얘기를 하자면, <춤>은 우선 작품이 생각보다 커서 가로길이는 391cm, 세로는 260cm이다.
비교해 보기 위해 제 큰 머리를 사용해 보았으니 짐작해 보시고 막상 작품의 실제 앞에 서면 인물들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은 압도감이 있다.
미술관에서 명작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에게 알려진 특히 대형 명작을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스케치와 소규모 유사한 작품들을 만들어서 수많은 연습을 한다. 그래서 <춤>도 스케치와 호수가 작은 약간 다른 느낌의 작품들이 있다.
<Music, Henri Matisse, 1910>
〈춤〉 옆에 나란히 걸린 〈음악〉은 같은 팔레트에서 전혀 다른 정서를 꺼낸다.
역시 다섯 명의 인물, 역시 파랑과 초록의 배경.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한 명은 바이올린을 켜고, 한 명은 노래하며, 나머지는 그저 앉아 있다.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화면 안에서 저마다 고립된 섬처럼 배치되어 있다.
춤이 원심력이라면, 음악은 구심력이다.
춤이 밖으로 터져 나가는 에너지라면, 음악은 안으로 침잠하는 에너지다.
<춤〉에서 그토록 뜨겁게 손을 잡던 인물들이 〈음악〉에서는 왜 저렇게 각자의 섬에 갇혀 있는 걸까.
두 그림을 나란히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리듬이 이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작품을 구매했던 슈킨은 모스크바 저택 계단 위아래에 마주 보도록 걸어두었다고 한다.
계단을 오를 때 〈춤〉을 보고, 내려올 때 〈음악〉을 보는 배치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작품이었다.
<The Red Room (Harmony in Red), Henri Matisse, 1908>
〈붉은 방〉미술책, 광고 혹은 굿즈에서 한 번쯤은 만나본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작품이 유럽이 아닌 에르미타주에 있다.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그림을 눈앞에 담아두면서 한참 말이 없었다.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막상 만나면 마음이 머리를 지배해서 말이 뇌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로 260cm, 세로 390cm.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 붉음이다.
탁자보도 벽지도 공간 전체가 하나의 붉음 안으로 용해되어 있다.
한 여인이 탁자 위에 과일을 조용히 놓고 있고, 창밖으로는 초록 정원이 내다보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이 압도적인 붉음의 일부로 흡수되어 있다.
붉음은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품는다.
방 안의 여인도, 창밖의 정원도, 탁자 위의 과일도 모두 이 붉음에 안겨 있다.
마티스는 색채로 공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색채로 감각 자체를 만들어냈다.
<The Conversation, Henri Matisse, 1908–1912>
붉음에서 떠나자마자 강력한 블루를 만나게 된다. 〈대화〉는 마티스 자신과 아내의 초상이다.
두 사람은 창가에서 마주 보고 서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로 창밖의 정원이 파란 벽처럼 가로막혀 있고, 그림 안 어디에도 말이 없다.
제목은 '대화'이지만, 화면은 침묵이다. 아니, 침묵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다.
대화를 하는 '중'이 아닌 '해야"하지만 하기 '싫다'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창살 무늬, 파랑의 서늘한 온도,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닿지 않는 그 거리.
그림 속 두 인물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각자의 침묵 속에 있는 것일까.
오래 들여다볼수록 답이 달라진다. 그것이 이 그림의 힘이다.
우리도 살다 보면 학교, 회사, 집에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너무 내어주거나 반대로 자기만 지키려다 보면 서로 힘들어서 멀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서로 말수가 줄어들고 점차 마음의 문마저 닫게 된다. 타인이 지옥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 고통도 마티스는 형태로 심리를 그리지 않고 색으로 심리를 그렸다.
마티스의 방은 3개로 다른 방으로 건너 가다 보면, 비교적 작은 두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시간 순서로는 이것들이 먼저다. 마티스가 야수파가 되던 바로 그 순간의 그림들이다.
<View of Collioure, Henri Matisse, 1905>
<Still Life with Vase, Bottle and Fruit, Henri Matisse, ca. 1906>
1905년 여름, 마티스는 남프랑스 해안 마을 콜리우르에서 그림을 그렸다.
〈콜리우르 풍경〉은 그 여름의 기록이다.
붓터치는 거칠고 색은 서로 충돌한다.
초록 나무, 붉은 지붕, 파란 하늘이 섞이지 않은 채 화면 위에서 부딪힌다.
같은 해 파리 살롱 도톤 전시에서 이 계열의 그림들을 본 비평가가 경멸적으로 내뱉은 말이
'야수들(les Fauves)'이었다. 맹수들의 그림이라는 뜻이었다.
인상주의 초기 이름 붙여질 때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시작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시대를 앞서는 변화는 그 시대의 다수의 생각을 넘어서기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하기 일쑤이다.
〈꽃병, 병, 과일이 있는 정물〉에서는 야수파의 원리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꽃병 옆의 파랑, 과일 옆의 주황, 테이블보의 초록.
마티스는 보색 대비를 단순한 기법으로 쓴 것이 아니라, 색이 색을 연결하는 방식 자체를 구성의 원리로 삼았다.
테이블 위 사과 하나가 왜 저렇게 위험하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Arab Café, Henri Matisse, 1913>
1912년 마티스는 모로코 탕헤르를 두 차례 여행했다.
아프리카의 강렬한 빛, 이슬람 모자이크의 기하학적 패턴, 카페 안에서 물담배를 피우며 조용히 앉아 있는 남자들 —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화면으로 수렴되었다.
야수파의 거친 붓터치가 여기서는 달라졌다.
인물과 배경과 바닥 문양이 하나의 평면 위에서 직조되듯 엮이고, 이슬람 장식 예술의 리듬이 화면 전체를 관통한다.
인물들의 실루엣은 타일 문양의 일부가 되고, 공간의 깊이는 사라지며, 모든 것이 균등한 장식의 밀도로 화면을 채운다.
마티스는 이 여행 이후 장식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랍 카페〉는 야수파의 마지막이자, 마티스 자신의 새로운 시작이다.
방의 한쪽 끝, 마티스와 연결된 공간에 조금 다른 결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모리스 드니와 피에르 보나르 등 — 나비파(Nabis)의 화가들이다.
나비파라는 이름을 가끔 듣긴 했는데 여전히 친숙하지 않다.
폴 고갱이 젊은 화가들에게 "색채는 눈앞의 것을 베끼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화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다."라고 했고 그 말에 감화된 젊은 화가들이 모인 것이 나비파였다.
이와 같이 나비파는 1888~1900년경 파리에서 활동한 젊은 화가들의 그룹으로, 상징주의·장식성을 강조하며 인상주의 이후 야수파 등 현대미술로 넘어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나비(Nabis)'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뜻으로 그들은 인상주의처럼 빛을 쫓지 않았고, 사실주의처럼 현실을 베끼지도 않았다. 그들은 색채를 납작하게, 선명하게, 감정의 온도에 맞게 쓰는 것이 그들의 방법이었다.
나비파는 마티스보다 앞선 세대다. 그들이 없었다면 마티스의 폭발도 없었다.
마티스가 색으로 세계를 재건했다면, 나비파는 그 터를 닦은 사람들이다.
에르미타주가 이 두 세대를 같은 층, 같은 흐름 안에 두고 있는 것은 그 이유에서다.
<Martha and Mary, Maurice Denis, 1896>
모리스 드니의 〈마르타와 마리아〉를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그는 “그림은 본질적으로 일정한 순서로 배치된 색채의 평면”이라고 하면서 종교·성서 주제를 현대적 의상과 단순한 풍경 속에 배치하였다.
이 작품에서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의 마르타는 자매관이고 마르타는 예수님이 집에 오실 때 먼저 맞이하였고, 마리아는 자주 들어보셨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헌신하는 인물이다.
완쪽에 마르타와 마리아가 있고 오른쪽에 예수님이 두자매의 집에 방문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성서 속 장면을 그렸지만 신학 교과서 같지 않다.
방 안의 빛은 평면적이고, 인물들의 윤곽선은 단호하며, 색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처럼 조용히 빛난다.
<Triptych: Reverie, Awakening, Cupid, Maurice Denis, 1911–1912>
세 폭 제단화 〈몽상, 각성, 큐피드〉는 삶의 세 국면을 각각의 패널에 담았다.
이 작품 역시 한쪽 벽면을 차지할 정도 아주 크다.
색조는 부드럽고 시간은 멈춰 있다. 마치 기도하는 것 같은 고요함이 있다.
당시에는 나비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고 그저 마티스룸을 나오면서 스타일이 신선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르누보의 체코화가 알폰스 무하(Alfonse Mucha)와 스타일이 비슷해서 인지
한참동안 시선과 발걸음이 작품에 머물렀다.
얘기가 나와서, 알폰스 무하는 두 번의 체코여행에서 무하박물관에 들르면서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나중에 무하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작년에 무하 전시를 해서 너무 반가워서 찾아가기도 했다.
여러 작품 중 사계를 좋아하는데 각 계절을 아름답게 표현했고 박물관에 크게 걸려있는데 한국에는 미니미가 와서 인사정도만 했다.
<The 4 Seasons, Alphonse Mucha , 1896>
모리스 드니의 방을 나서면 바로 고흐의 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모네, 르누아르, 고갱, 고흐. 드가, 피사로, 시슬리 누구나 한 번쯤은 어딘가에서 보았을, 그러나 러시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다.
프랑스 화가 작품들이 많아서 인상주의 작가, 작품소개만 해도 몇 편을 더 쓸 수 있지만 1부로 정리하고 사실주의, 아카데미즘의 화가 제롬, 쿠르베, 다비드, 티소 등으로 넘어가야겠다.
요즘 바빠서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아서 언제 다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나니 다시 에르미타주 작품앞에 서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
덧붙이자면 러시아 미술관 여행의 진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에르미타주야 러시아에서 유럽회화를 만나서 귀할 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중박과 같은 <러시아 국립미술관>에서 러시아 화가와 작품을 만나보고
모스크바로 넘어간다.
거기서 <푸슈킨 박물관>에서 유럽회화를 재회하고 러시아 민족 미술의 집 <트레차코프>에 도착해서
일랴 레핀, 이반 크람스코이, 파벨 페도토브 등을 만나면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