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의 서구화에 대한 야망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날,
나는 강보다 먼저, 궁전을 마주했다.
네바강을 따라 흐르는 얼음 위로 초록과 금빛이 아득하게 번져 있었다.
그 찬란한 위엄 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이름,
에르미타주(Hermitage).
프랑스 루브르, 영국 대영박물관, 스페인 프라도 등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은 이름
소장 유물만 300만 점에 이르기 때문에 며칠을 두고 봐도 보기가 어렵다는 에르미타주를 가보고 싶었다.
그곳은 단지 미술관이 아니었다. 한 제국이 꿈꾸던 세계, 그 자체였다.
황제의 사적인 공간에서 제국의 얼굴로
에르미타주의 시작은 조용했다.
1764년, 예카테리나 2세는 독일 미술상 요한 에른스트 고츠코프스키로부터 225점의 유럽 회화를 구입했다. 그림은 궁전의 한쪽, 조용한 개인 공간에 걸렸다.
예카테니라 2세는 겨울 궁전이 아닌 자신만의 조용히 머무르는 곳에서 작품을 보기를 원했는데 그곳이 바로 ‘에르미타주(Hermitage)’, 즉 ‘은둔처’라는 이름의 유래다.
하지만 이 작은 은둔처는 곧 제국의 얼굴이자 야망의 창이 된다.예술을 통해 유럽을 품고자 했던 욕망,
18세기 후반, 에르미타주는 황실의 개인 수장고를 넘어 점점 외부 세계로 확장되었다.1852년 제국박물관으로 문을 열었지만 처음에는 제한된 관객만 받았다.
그러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신 에르미타주'를 완공하고 일반 대중에게 개방한다.
그 순간부터 에르미타주는 왕권의 상징이자 문화 공공성의 실험장이 된다.
국가 주도의 문화재 매입등으로 20세기 동안 이전에 비해 4배 이상 소장품이 확대된다.
다섯 개의 궁전, 하나의 유기체
에르미타주는 단일 건물이 아닌, 서로 연결된 다섯 개의 궁전과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들은 각각의 시대, 기능, 양식을 품고 있으며 공간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지도로 작동한다.
겨울궁전 (Winter Palace)은 1754~1762년 완공된 로코코 양식의 궁전으로, 제국의 중심이자 황제의 거처로서 오늘날 에르미타주의 핵심 입구 역할을 한다.
소 에르미타주 (Small Hermitage)는 예카테리나 2세가 가장 먼저 그림을 걸었던 사적인 미술관으로서 유리 천장, 대리석 기둥, 프랑스식 장식이 인상적이다.
구 에르미타주 (Old Hermitage)는 수장품이 늘어나며 확장된 두 번째 미술관 건물로서 신고전주의 양식 중심이다.
신 에르미타주 (New Hermitage)는 최초의 공공 미술관으로, 고대부터 근대까지 유럽 회화를 시대 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 전시가 이루어지는 중심 공간이다.
에르미타주 극장 (Hermitage Theatre)는 고대 로마식 반원 무대를 갖춘 공연 공간으로 예술, 권력, 대중이 교차하는 제국의 무대이다.
각 건물은 회화, 조각, 보석, 건축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담고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미술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제국의 황제들이 사용하던 물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부두아르(Boudoir)는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의 거처 일부였다.
장식은 19세기 전반, 신고전주의가 퇴조하고 절충주의(Eclecticism)가 유행하던 시기의 취향을 반영한다. 이후 이 부두아르를 로코코 양식의 정교한 실내 공간으로 재장식했다.
작은 왕위의 방(Small Throne Room)는 니콜라이 2세의 서재 등은 황실의 생활과 사적 공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특히 ‘소 에르미타주’의 파빌리온 홀(Pavilion Hall)은 네 방향으로 열린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18세기 영국의 시계 장인 제임스 콕스(James Cox)가 제작한 ‘공작 시계(Peacock Clock)’가 전시되어 있다.
작동 시 공작이 깃을 펴고, 수탉이 울며, 올빼미가 눈을 깜박이는 이 시계는 제국의 유희와 정교한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데 관람객들은 대부분 여기서 머물며 감탄하는 장소이다.
또한 ‘황금 응접실(Gold Drawing Room)’은 화려한 금색 장식과 샹들리에로 꾸며져 있으며, 예카테리나 대제가 수집한 1만 점의 원석 조각과 3만 점의 주조 보석이 전시되어 있다.이곳은 제국의 취향이 고전에서 비롯되었음을 상징하는 방이기도 하다.
에르미타주의 회랑과 전시실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경험이다.
회화관의 구성: 유럽 미술사의 흐름을 걷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16개 주제로 구분되어 있다.
고대세계 우물부터 동양문화, 고고학 유물부터
17~18세기 플랑드르 네덜란드 미술, 13~18세기 이탈리아 미술, 15~19세기 스페인 미술,15~18세기, 19~20세기 프랑스 미술, 16~19세기 영국 미술, 15~18세기 독일 미술
19~10세기 기타 유럽미술 그리고 러시아 문화사 미술 등이다.
에르미타주의 회화 전시실은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과 사조, 지역을 따라 이동하는 ‘미술사적 내러티브’의 흐름이 설계되어 있다.
전시의 출발점은 고전의 원형을 보여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들이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 성인 군상들이 차분하고 균형 잡힌 구도로 등장하며,
서구 회화의 뿌리를 알리는 장면으로 방문자를 맞이한다.
이어지는 방에서는 빛과 감정의 극단을 보여주는 렘브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 등의 작품이 걸려 있다.
명암 대비와 감정의 드라마가 극대화된 공간으로, 회화의 감각적 완성도를 체험할 수 있다.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부셰, 와토, 푸생 등
로코코의 사랑스러움과 신고전주의의 엄격함이 교차하는 섹션이다. 러시아 황실이 유럽 각국의 양식을 섭렵하며 문화적 총체 로서의 미술관을 의도했음을 드러낸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마티스, 피카소…
조명은 부드럽고, 벽은 한결 넓으며, 관람자의 시선도 더 자유롭다.
말레비치, 샤갈, 레핀 등 제국의 틀 바깥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한 러시아 작가들의 방이다.
혁명 이후의 실험, 전통과의 결별, 그리고 러시아만의 시선이 피어난 공간.
에르미타주를 걷는다는 건 유럽 미술의 중심을 따라가는 일이자,러시아가 예술을 통해 세계를 받아들이고 재구성했던 방식을 체험하는 일이다
이처럼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회화 미술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고 러시아와 관련해서는 레핀, 샤갈 등 작품과 러시아 제국의 물품등만을 만날 수 있다.
이런 흐름과 유사한 것이 모스크바의 푸슈킨 미술관이고
진정한 러시아 미술을 만나려면 트레차코프나 국립러시아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에르미타주 기억의 건축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지만,
그 시선은 제국의 야망 위에 놓여 있었다.
에르미타주는 단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러시아가 유럽과 나눈 ‘예술적 대화’의 현장이다.
그 안을 걷는다는 건,
시간과 권력, 취향과 감각이 교차하는 문명의 미로를 따라가는 일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내부와 전시 그리고 황실에 대해 더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은
영화'Russain ark'를 추천드립니다.
다음 화부터는 서양 회화관에서 만난 작품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와우 에르미타주 박물관
작가님 글을 읽으니 직접 가본것 같습니다 정말 화려하고 어마어마하네요 러시아 예술의 깊이는 끝이 없는건 같습니다
네 글 읽고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보시는것 같다니 기쁘네요. 여러 미술작품들도 소개해보려고 하니 다음화도 기대해주세요
@미술관에 간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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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작가님 감사합니다 작가님 시도 잘보겠습니다
@미술관에 간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