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를 캔버스에 담다
러시아 역사, 천 년의 여정
푸른 눈의 바이킹들이 동유럽 평원을 지배하던 시절부터 오늘날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까지,
러시아의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입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 그 광활한 대지에서 천 년에 걸쳐 펼쳐진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키예프 루시, 슬라브의 요람
882년, 북유럽에서 온 바이킹 전사들이 키예프를 중심으로 동슬라브 부족들을 통합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키예프 루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공통 조상이 되었습니다.
러시아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은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의 개종이었습니다.
그는 정치, 경제 면에서 밀접한 비잔티움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동방정교회를 받아들였고,
이는 단순한 종교 선택이 아닌 문명의 선택이자 통치의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이슬람교도 검토했으나 루시 사람들이 술을 워낙 좋아해서 맞지 않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로마 가톨릭 서유럽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몽골의 그림자, 모스크바의 부상
블라디미르 대공의 사망이후 12~3세기는 루시공국이 여러나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를 틈타 북방의 대초원의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불과 검을 들고 러시아를 침략했습니다.
키에프를 점령한 몽골군은 폴란드를 거쳐 아드리해를 지나 오스트리아 빈남쪽까지 진격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후 240년간 이어진 몽골의 지배 하에서
러시아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역설적으로 러시아를 단결시켰습니다.
14세기부터 세력을 키워가던 모스크바 대공국-모스크바'라는 말은 핀란드어로 '습기가 많은 곳'-
처음에는 몽골의 충실한 조공국이었지만, 점차 독립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1480년, 이반 3세가 몽골의 사신을 물리치며 루시를 통일하고 독립을 선언했을 때, 새로운 러시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차르의 러시아, 제국의 탄생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다"라는 선언과 함께, 러시아는 로마와 비잔틴의 계승자로 자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반 3세의 아들 바실리 3세가 일찍 죽고 그의 아들
이반 4세는 1547년 열여섯살의 나이에 '차르'(황제)로 즉위하였고 러시아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귀족들의 권력으로부터 점차 중앙집권을 강화하려고 여러가지 개혁을 추진하였고
외부로는 카잔한국(몽골)을 물리치고 시베리아 땅을 러시아 영토로 맞이하게 됩니다.
'Ivan the terrible(이반뇌제)' 불리었던 이반 4세는 폭압적인 정치를 일삼았고 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게 됩니다.
류리크 왕조의 이반 뇌제 사후에 후손이 이어지지 않자 러시아는 한순간에 혼란에 빠졌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봉건체제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폴란드의 침략까지 받게 됩니다.
이에 이반 뇌제의 친척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왕위에 등장하면서 러시아는 17세기부터
로마노프 왕조가 300여년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러시아는 농노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대부분 비참한 생활을 하였고
이로 인해 17세기 러시아는 내부적으로는 농노의 봉기가 가속화되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 전제주의는 더욱 강화되었고 이즈음 서유럽과 교류가 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궁중에서는 귀족들간의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싸움이 지속되었고
여기서 살아남은 표트르 대제와 함께 러시아의 진정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서양문물에 익숙했던 그는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우기 위해 군대에 들어갈 정도로
열렬히 서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고자 했고 "러시아를 유럽으로 끌고 가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얼지않는 항구를 향한 열망이 있었고 흑해를 건너 스웨덴과 북방전쟁에 승리하고 발트해 연안까지 세력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초 네바강 삼각주에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서구식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Peter the Great(표트르 대제)는 수염을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서양식 복장을 강요하며,
러시아 귀족들에게 유럽 언어를 배우게 했습니다.
이 급진적 서구화는 러시아의 정체성에 큰 균열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국의 황금기의 마무리와 붉은 별의 시대
표트르 대제 사후에 크렘린 궁에서는 프로이센 출신의 '예카테리나 2세'가 표트르 3세의왕비가되고 이후 남편을 폐위하고 직접 통치하며 '예카테리나 여제'로서 러시아의
개혁을 이어가게 됩니다.
19세기,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유럽의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표면적 영광 아래에는 깊은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산업화의 지연, 농노제의 폐지, 데카브리스트의 난등 자유주의적 개혁의 실패는 러시아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 사후 그의 동생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자 전제정치를 강화하였고
크림전쟁에서 영-프 연합군에 의해 패배하게되면서 군국주의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1894년 니콜리아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전앞에 몰린 평화시위를 하는 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고 러-일전쟁에서도 패하게 되면서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만이 누적되면서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봉건 군주제는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함께 마무리되고 로마노프 왕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1917년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혁면을 통해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 정부 수립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