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과 금빛 돔이 어우러진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미술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버킷리스트 1순위였다.
러시아 날씨가 좋은 시기였던 9월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지금은 러시아 상공을 지나지 못해 유럽가는 길도 멀어졌지만 당시에는 8시간 남짓 비행을 하고 갈수 있었다.
한국어로 표시된 기내 화면에는 비행 경로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었고, 비행기 아이콘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해 날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도착이다' 설레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첫 만남
모스크바에 주재원으로 있던 친구를 보러가기전에 상트페테르를부르크를 혼자 여행하고 이동하겠다고 했다.
여행에서는 MBTI "P"라서 구체적으로 준비를 하지 않아서
공항에서 나와 처음 마주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공항에 내린 시각은 밤 10시, 러시아어도 못했다.
러시아는 yandex-우리나라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카카오T와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유심을 구매했는데 뭔가 설치가 안되서 어려웠다.
그래서 러시아 불곰 아저씨와 택시 가격을 서로 안되는 영어로 흥정해서 택시를 탔다-이 때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랐다-
택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낯설었고 내가 가는길이 맞는지도 몰랐다. 공항에서 숙소는 30분내의 거리였는데 한시간이나 걸렸다.
예정한 곳에 내렸는데 택시비가 거의 10만원 가까이 나왔다.
많이 돌아온 모양으로 클레임을 걸고 싶었는데 러시아어를 하지 못하니영어로 얘기를 했는데 택시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단 여기서 불곰아저씨가 어디로 데려가도 모를일이라'
환전해온 당장 쓸 루불을 다내니 운전사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택시에서 내리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3일후에 모스크바로 가기위해 공항택시를 타보니 5배는 족히 넘는 돈이었다.-
숙소를 찾으려니 18세기 건물이라서 호텔이라 딱써져있는게 아니라서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찾아해메었다. 그러다가 20대 러시아 청년들이
영어를 할수 있어서 나를 호텔로 안내해주었다.
숙소 체크인도 러시아어가 잘안되니 손짓발짓 해가면 겨우
하고 들어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나름 유럽여행도 많이 해봐서 영어로 하면 되겠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러시아는 냉전시대 적대국이라 영어가 통용되지 않았다.
그저 미술작품 볼 생각에 준비를 하지 않은 탓이었지만
그래도 빼제르 호텔에서 첫날을 보냈다.
상트페테르부르그를 거닐다 - 역사와 종교의 도시를 만나다
이 도시는 물의 도시였다. 베네치아를 닮았지만, 더 웅장하고 넓었다.
역사시간에 잠깐 지나치는 이름중 러시아제국의 표트르 대제라고 들어본 적이 있을텐데
표트로 대제가 '유럽으로 향하는 창'으로 건설한 이 도시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러시아어가 안되서 우선 도시 원데이 가이드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를 따라 처음 마주한 건물은 노란색 외관과 높은 첨탑이 인상적인 아드미랄티 건물이었다.
앞에는 시원한 분수가 있어 러시아의 예상치 못한 따스한 날씨를 식혀주는 듯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이 황금빛 건물은 제정 러시아 시대의 웅장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잘 정돈된 정원과 분수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휴식 공간이었다.
그리고 Peter the Great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다.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 러시아를 일깨우고 새롭게 도전하려고 했던 위용이 기마를 탄 모습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인 성 이삭 대성당은 그 웅장한 규모와 아름다운 건축양식으로 나를 압도했다.
푸른 하늘 아래 금빛 돔이 빛나는 모습은 마치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다리 같았다.
고전적인 그리스-로마 양식의 기둥들과 함께 이 거대한 건물은 러시아 제국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했다.
카잔 대성당의 내부는 화려한 이콘화와 금박 장식으로 가득했다.
성당 내부는 녹색 기둥과 금색 장식이 조화를 이루며 깊은 종교적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방문객들이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사진을 찍거나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방의 베네치아'라는 별명답게 아름다운 운하들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다. 운하를 따라 줄지어 선 색색의 건물들이 물에 비친 모습이 마치 수채화 같았다.
그리보예도프 운하는 도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오렌지색과 하얀색 건물들 사이로 교회의 첨탑이 보이는 풍경이란...
"이거 현실이 맞나?"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운하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피의 구세주 성당은 그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테트리스 성당은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근처에 있는 것으로 유사한 양식이지만 다르다.-
양파 모양의 다채로운 돔과 화려한 파사드는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성당은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된 자리에 지어졌어요. 피의 구세주라는 이름이 여기서 왔죠."
가이드가 설명해주었다.
당시 성당의 일부가 공사 중이었지만, 그 화려함과 독특함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 역시 이 아름다운 건물을 배경으로
소중한 추억을 남겼다.
상트페테르부르그를 거닐다 - 제국의 화려함을 만나다
둘째날 배를 타고 이동하니 황제의 여름 궁전 페테르고프 궁전의 유명한 분수 정원이 나온다.
'러시아의 베르사유'라 불리는 이곳은 표트르 대제가 지은 여름 궁전으로,
화려한 금빛 조각상과 시원하게 뻗은 분수가 인상적이었다.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모든 분수가 전기 없이 자연 수압만으로 작동한다니...' 18세기 기술력의 놀라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체스판 무늬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정원의 전경은 마치 그림 같았고, 양쪽에 늘어선 작은 궁전들과 함께 황제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페리를 타고 도시로 돌아온 우리는 겨울궁전 광장과 알렉산드르 원주를 방문했다.
방문한 겨울궁전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민트 그린 색상의 궁전 외관과 화이트 컬럼이 어우러진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겨울궁전을 박물관으로 바꾸었고 우리는 그것을 에르미타지 박물관이라 부르고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품이었다.
러시아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마치 "어서 와, 기다렸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데,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은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든 것이 예술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고갱...
미술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이 내 눈앞에 있었다.
"하루 종일 있어도 다 못 볼 거야," 가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모든 작품을 1분씩만 봐도 9년이 걸린다는 이 박물관은 겨울궁전의 구관
- 관광객들은 주로 여기를 간다-과 신관으로 이루어졌는데 내가 보고싶어하는
미술작품은 신관에 있어서 다음날 다시 찾았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마지막 그리고 모스크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도로의 야견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호텔까지 천천히 걸어오며- 밤길도 생각보다 안전했다-여행의 마지막 아쉬움을 달랬다.
10시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에르미타주 미술관 신관으로 향했다.
신관에는 유럽 작가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날 본 고전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의 작품들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후 3시 30분, 아쉬운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공항으로 향했다.
풀코보 공항에 4시 45분에 도착해 수속을 마친 후, 5시 40분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창문으로 작아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이면서도 유럽이고, 유럽이면서도 러시아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서유럽의 세련됨과 러시아의 웅장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뒤로 하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덧붙이며.
마린스키 극장 발레단, 김민기 수석 발레리노, 전민철 솔로이스트가 입단한 러시아 최고 발레단 공연을 보고싶었는데 9월 시즌이 해외 공연을 하는 기간이라 발레공연을 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빼제르에서 러시아를 못해서 혹은 입맛에 맞지 않아서 주로 버거킹을 이용했다. 마지막날 숙소 근처에 한식당을 발견하고 기대하지 않고 가서 비빔밥을 시켰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날뻔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고려인들이 있는 식당에서 한국음식이 잘나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