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라고 하면 작가님들은 어떤 것을 떠오르시나요?
'러-우크라이나 전쟁',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모스크바' 등이 있고
물론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내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 러시아 미술 작품과 화가 중 떠오르시는 분은 있으신가요?
'어, 러시아 미술 화가' 일단 러시아 미술이 유럽의 미술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중에 러시아 태생의 화가는 알더라도 이름이 어려워 기억하기도 어렵습니다.
러시아 미술을 있는 그대로 보면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이방인과 같습니다.
그나마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러시아 화가 중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작품을 남긴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화가는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나, 여러 이유로 프랑스로 이민을 가서 작가활동을 하다 보니 더 알려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미술을 마주하기 전에 러시아인들의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들,
그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 광활한 대지를 관통하는 정신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러시아의 예술문화, 특히 종교, 문학, 음악, 발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각자 독자적인 역사와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된 흐름이 있습니다. 바로 장엄한 감정과 깊이 있는 철학입니다.
러시아는 가볍고 경쾌한 것보다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을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 영혼을 담은 신앙
러시아에서 종교는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민중의 정신을 형성한 핵심요소가 되었습니다.
988년, 블라디미르 1세가 비잔틴 정교회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러시아의 종교적 정체성이 확립되었습니다.
그 후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러시아 정교회는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유명한 성당만이 아니라 도심 곳곳에도 정교회들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러시아 제정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를 겪으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거의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 정부는 정교회를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창고로 쓰는 등 탄압하고 무신론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여전히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교회 성당을 방문했을 때 황금빛 돔 아래, 향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경건함으로 가득 찼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신비로운 교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서방 기독교(가톨릭, 개신교)가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반면, 러시아 정교회는 신비와 전통을 중요시합니다.
정교회의 특징은 비잔틴 전통에서 비롯된 신비주의적 요소, 이콘(성화)의 중요성, 그리고 장엄한 예배 의식에 있습니다.
특히 이콘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이콘(Icon)으로 우리가 흔히 바탕화면, 패션 "아이콘(Icon)'으로 부를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원래 image나 portrait의 그리스어서 유래했고,
러시아에서는 신의 성화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콘화는 신과의 매개체로서 특히 아래 블라디므르 성화는 몽골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모스크바로 옮겨오는 등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문학 –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서사
러시아 문학은 단순히 한 나라의 문학이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깊고
철학적인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푸슈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고골 등
문학의 거장들이 이끌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심오한 철학과 감동 그리고 역사적 현실에 대한
깊은 시각을 전해주었습니다.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역사가 개인과 민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거대한 실험입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사랑과 도덕,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규범의 충돌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겪는 심리적 고통은 단순한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진 도덕적 딜레마의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 영혼의 심연을 파헤치며, 선과 악,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러시아 문학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러시아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러시아어 문학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운문 소설이라는 독창적인 형식을 선보였으며, 이후 러시아 문학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골의 『코』와 『외투』는 부조리한 관료주의를 풍자하며,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소비에트 시대의 억압을 고발하는 등 사회 비판적인 작품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작가들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시대적 고민을 작품 속에 녹여왔습니다.
이를 통해 러시아 문학의 특징은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것,
민중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 그리고 철학과 결합하는 것에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 삶과 죽음, 사랑과 고독,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여정입니다.
러시아 음악 – 감정의 극한을 표현하다
러시아 음악은 유럽 고전 음악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웅장한 스케일과 강렬한 감정 표현이 결합 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19세기 러시아 국민악파는 러시아 민속음악을 클래식에 접목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 차이콥스키,무소르그스키, 스트라빈스키 등이 있습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서정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정서가 강하게 흐릅니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발레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그 선율에는 우울과 애수가 스며 있습니다.
러시아 음악과 미술이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은 오페라와 발레 무대입니다.
무대미술은 음악이 들려주는 서사를 색과 형태로 구현하는 작업으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같은 작품은 동화적인 회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으로 구성된 "러시아 5인조"는 서유럽식 고전 음악에서 벗어나 러시아 민속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 역사와 민중의 정서를 담아낸 작품인데, 이 오페라의 무대미술은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Surikov)의 역사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러시아에서는 음악과 회화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러시아적 감수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러시아 발레 – 세계를 사로잡은 예술적 몸짓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을 둘러보고 발레 공연을 영상으로 보면서
저는 발레가 단순한 무용이 아니라 러시아 정서와 감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예술 장르임을 깨달았습니다.
발레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고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는 프랑스식 발레를 받아들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황실 발레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러시아 발레는 유럽 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되, 더욱 서사적이고 극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창립한 "발레 뤼스(Ballets Russes)"는 전통 발레를 해체하고 현대적인 실험을 도입한 혁신적 발레로서 현대 발레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발레 뤼스’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음악, 무대미술, 의상 디자인이 결합된 종합예술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샤갈(Marc Chagall) 같은 화가들의 무대 디자인이 더해지며, 발레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bdTdJGCfytM?t=2
2015년 우리나라의 김기민 발레리노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Mariinsky Theatre)
의 동양인 최초 수석 무용수가 되었고
10년 만에 전민철 발레리노가 솔로이스트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발레무용수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마린스키발레단에 한국인 발레리노가 수석, 솔로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발레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러시아 발레가 더 관심을 가는 지점입니다.
러시아 예술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러시아의 문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표면은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복잡하고 풍부한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앞서 본 것처럼 종교, 문학, 음악, 발레 그리고 미술이 각각 독립적이지만서로 영향을 주고 발전해 왔습니다.
미술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이 아니라 그 속에는 문학이 있고, 음악이 있으며,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의 몸짓이 함께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러시아 역사와 미술사를 통해, 이 문화적 요소들이
어떻게 시각예술로 표현되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 문화의 여정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