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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역사와 미술의 흐름- 미술

천년의 역사를 캔버스에 담다

by 미술관에 간 노무사 Mar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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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러시아 천년의 역사의 흐름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러한 역사와 함께 러시아 미술은  종교, 예술, 사회적 변화와 함께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이콘화의 신비로운 금빛에서 사실주의의 강렬한 사회 비판, 아방가르드의 대담한 실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까지

러시아 미술의 연대기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빛나는 금박 속 신성함, 이콘화의 시대

블라디미르 대공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러시아 이콘화는 동방 정교회의 영적 세계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몽골의 침략과 모스크바 대공국의 성장을 거치며 이콘화는 러시아 미술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의 벽면을 장식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부터, 작은 예배당의 이콘화까지.

이 시기 이콘화는 금박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며, 인물을 평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서구가 원근법과 해부학적 정확성을 추구할 때, 러시아 이콘화는 초월적 영성을 강조했습니다.


황금빛 배경 위에 그려진 성인들의 얼굴은 언제나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표현, 원근법의 부재는 세속적 현실이 아닌 영원한 신성함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러시아 미술에서 이콘화는 14세기말부터 15세기 초무렵에 안드레이 루블료프에 의해 절정에 이르고 이후 17세기들어서면서 점점 그 힘을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서구의 바람이 분 궁정, 신고전주의의 등장

17세기 러시아 문회의 세속화 경향과 함께 종교 미술의 틀 안에서 세속 장르인 초상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유럽의 창문을 열어야 한다."표트르 대제의 이 선언은 러시아 미술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18세기 초, 서유럽을 여행하며 각국의 미술을 접한 황제는 고국에 돌아와 유럽의 미술가를 초빙하고 러시아 미술가를 서유럽으로 보내면서 회화에서도 서구화를 장려했습니다.

드미트리 레비츠키의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화」를 보면, 러시아 미술이 얼마나 급진적으로 변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한 궁정 복장을 한 여제의 모습은 종교적 상징성보다는 세속적 권위와 화려함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르크의 미술 아카데미는 서유럽의 사실적이고 고전주의적인 미술이 러시아 회화의 전통으로 자리잡도록 이끌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서유럽 미술의 영향이 확고하게 뿌리내리면서 장르면에서도 초상화외에 역사화가 발달하고 풍경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서구의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는 동안, 러시아 미술은 무언가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바로 러시아 민중의 삶과 영혼이었습니다.


민중의 삶을 화폭에 담다, 이동파의 사실주의


19세기 초에 이르러 이러한 서구의 고전주의적인 사조를 벗어나고자 하였고, 인간의 개성과 서민의 삶에 초점을 맞춘 낭만주의 미학이 사실주의와 만나면서 러시아적인 회화의 색채를 짙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러시아 농민의 현실은 그리지 않는가?"

19세기 중반,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를 집단 탈퇴한 젊은 화가들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이반 크람스코이, 니콜라이 게, 이반쉬시킨, 이삭 레비탄, 미하일 브루뷀, 발레틴 세로프, 바실리 수리코프 그리고 일랴 레핀 등이  '이동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러시아 각지를 여행하며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동파는 역사화와 장르화에서 시대의 감성을 드러내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거나 러시아의 농민과 자연의 풍경을 담아내었습니다. 이동파의 사실주의는 러시아 미술의 정체성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그들은 유럽의 기법을 사용하면서도,오직 러시아적인 주제와 감성을 표현했습니다.


일리야 레핀의 「볼가의 인부들」을 보면 이들이 추구한 미술의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배를 끄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농노제 폐지 후에도 여전히 고통받는 러시아 민중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레핀은 인간의 영혼을 생생하게 포착해서 표현한 사실주의의 대가 이고 앞으로 미술관 작품 여행에서도 자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Barge Haulers on the Volga, Ilya Repin, 1870–1873, The state of Russian museum
혁명의 열기, 아방가르드의 실험

20세기 초, 러시아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 미술계에서는 이미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사실주의의 흐름과 예술의 민중성을 거부하고 자유성과 창조를 강조하면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미술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의 선구자로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그의 「검은 사각형」은 화면 중앙에 검은 정사각형만 그린 단순한 구성이지만, 그것은 "순수한 감각의 우월성"을 선언한 미술사의 실험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속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독창적 예술셰계를 표현한 미술가가 바로 "바실리 칸딘스키'와 '마르크 샤갈"입니다.

Black Suprematic Square, Kazimir Malevich, 1915, Tretyakov Gallery


이상화된 현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시대

1917년 이후에도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세계 미술의 선두에 서 있었지만 그 자유로운 실험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 스탈린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소비에트 정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유일한 공식 미술 양식으로 선언하면서아방가르드 작가들은 '형식주의자'로 비판받았고, 많은 이들이 망명하거나 창작을 중단했습니다. 50년간 지속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 천년의 러시아 미술은 그 색채를 잃어가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의 「레닌의 연설」 같은 작품은, 혁명 지도자를 영웅적으로 묘사하며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했습니다.


캔버스 위의 러시아 영혼

천 년의 역사를 거치며, 러시아 미술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종교적 이콘에서 사실주의, 아방가르드,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까지. 하지만 모든 변화 속에서도 러시아 미술은 언제나 시대정신을 반영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예술의 변천사가 아니라, 러시아인의 정체성과 영혼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러시아 미술관 여행을 하기 위해 러시아의 예술, 역사 그리고 미술사까지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부터  에르미타주의 서양의 회화작품과 국립러시아 미술관, 트레차코프에 걸린 러시아 회화 작품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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