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가장 잘 이해하는 브랜드?
요즘 뷰티 브랜드들의 소셜 미디어 전략을 보면 다들 바쁘다. 밈(meme)을 쫓고, 틱톡 챌린지를 따라하고, 빛나는 피부를 자랑하는 인플루언서를 앞세운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소셜 미디어의 공기를 읽으며 입소문을 키워온 브랜드가 있다. 바로 ‘CeraVe(세라비)’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글로벌 스킨케어 브랜드 CeraVe는, 유행보다는 진정성을, 트렌디한 메시지보다는 과학과 커뮤니티 중심의 마케팅을 고수하며 전 세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저자극 스킨케어 브랜드’로 성장해왔다. 2005년 단 세 명의 약사들이 시작한 브랜드는 어느새 연 매출 1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고, 그 비결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잘 듣는 것.
CeraVe는 단순히 피부 전문가들만을 듣는 게 아니다. Reddit, 트위터(X), 틱톡, 그리고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관찰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최근 몇 년 사이 CeraVe가 보여준 마케팅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바로 ‘마이클 세라 캠페인’이었다.
한 Reddit 유저가 남긴 “CeraVe를 마이클 세라가 만든 거 아님?”이라는 농담 섞인 글에서 시작된 이 밈은, 브랜드의 슈퍼볼 광고 캠페인으로 발전했다. 의도적인 ‘루머 유출’ → 온라인 관심 유도 → 슈퍼볼 광고에서 마이클 세라 깜짝 등장이라는 3단 구조는, 브랜드가 유머를 활용하되 소비자와의 신뢰를 잃지 않는 법을 정확히 보여준다.
광고는 ‘마이클 세라는 브랜드 창립자가 아니지만, 농담은 우리가 받아줄게’라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과 유쾌한 진정성으로 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브랜드는 웃음을 주되, 억지로 웃기려 들지 않았다.
이러한 캠페인이 가능했던 배경엔, 빠르게 움직이는 디지털 조직이 있다. CeraVe의 글로벌 디지털&소셜 헤드인 Kelly Buchanan Spillers는 “우리 팀은 ‘온라인 과몰입 세대(chronically online)’로 구성돼 있고, 어떤 아이디어든 조직 안 어디에서든 나올 수 있도록 열려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CeraVe는 소비자들이 스킨케어 제품을 두피에 사용한다는 온라인 행동을 포착해, 바로 ‘헤드 오브 세라비’ 캠페인과 함께 헤어케어 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철저히 유저 기반의 인사이트를 제품과 콘텐츠로 연결한 사례다.
CeraVe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밈을 잘 활용해서가 아니다. 그 안에 ‘과학 기반’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다. 모든 제품은 피부 장벽을 회복하는 피부과 전문의의 원칙에서 출발하며, 브랜드의 핵심 성분인 세라마이드와 MVE 기술은 20년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Like a derm’(피부과 전문의처럼)이라는 슬로건도 팬데믹 초기에 탄생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메시지는, 소비자 누구나 피부과 수준의 스킨케어를 일상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브랜드의 철학을 담고 있다.
CeraVe는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를 섭외할 때도 단 하나의 기준을 적용한다. “진짜로 제품을 쓰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기준은 크리에이터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고, 소비자는 억지스러운 광고가 아닌 신뢰감을 얻게 된다.
이제 브랜드는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새로운 시장 확장을 앞두고 ‘현지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며 ‘하이퍼 개인화된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를 실험하고 있다. 모든 전략은 철저하게 커뮤니티의 행동과 대화에서 출발하고, 브랜드는 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CeraVe는 화려한 포장이나 유명 인플루언서에 기대지 않고도, 소비자와 진정성 있게 연결되는 방법을 증명해온 브랜드다. 과학에 기반한 제품력, 피부과 전문의와의 협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일상 언어로 풀어내는 디지털 전략은 단순히 스킨케어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인터넷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게 했다.
특히, 이 브랜드가 보여주는 마케팅 철학은 오늘날의 브랜드 운영자들에게 중요한 인사이트를 준다. 브랜드는 더 이상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듣고 반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소비자가 먼저 말하고, 브랜드는 그 대화에 참여하며 가치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웃긴 밈은 광고 회사가 아닌 Reddit에서 나오고, 제품 사용법은 브랜드 설명서보다 TikTok에서 먼저 발견된다. CeraVe는 이런 ‘밑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을 수용하고, 그것을 브랜드 내러티브로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의 지적 수준을 얕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
앞으로의 마케팅이란 결국, 얼마나 정교한 광고를 하느냐보다 얼마나 진심으로 소비자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CeraVe의 지난 20년은 그 증거이며, 앞으로의 20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 듣는 브랜드'의 저력은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