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우울함이 없어서 나아진 줄 알았다. 아니 지금도 사실 우울증인지 자기혐오의 시간인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겨울서점’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았다. 이 분도 자기혐오의 시간이 있었고,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그때마다 읽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오늘 아침엔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우울하고 한없이 슬퍼졌다. 아마 원인은 나 자신일 테지. 건강하게 먹고, 운동해서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건 알고 있다.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데 먹는 게 좋고 외로움과 허전함을 음식으로 채우려고 했던 걸까? 체중이 늘어갈수록 나는 짜증이 잦아졌고, 부정적이고, 자기혐오를 꾸준하게 했다. 불어난 나의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거울은 더더욱 멀리 했으며, 객관적으로 나의 몸,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에 당장 나의 쾌락을 향해 손을 뻗어 맛난 음식들을 채워 넣었다. 그러던 오늘 아침,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스트레스받을 게 없는데 우울한 이유가 뭔지 객관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라. 보기 싫은 볼살이며, 그전엔 거북목 때문인지 보이지 않던 턱살이며, 셀룰라이트로 얼룩진 나의 피부들이 울그락 불그락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피부는 트러블이 일어났고 상처가 생겨도 잘 아물지 않았으며 부종이 심해졌다. 큰 용기를 들고 나는 체중계 앞에 내 몸을 실었다. 실로 충격이었다. 내가 이 정도로 쪘단말인가? 목표 몸무게까지 7kg가 남았을 때 한없이 멀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7kg가 더 쪄버렸으니 결국엔 더 멀어진 셈이다.
모델 한혜진 씨의 말대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내 몸밖에 없는 건데 나는 이마저도 못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맘대로 안되는 건데, 공부랑 운동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데. 아차 싶었다. 체중계에 뜬 숫자들을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 사실 꼴도 보기 싫은 숫자들이었지만, 음식이 먹고 싶어 질 때마다 충격을 받으려고 찍었다. 정신 차리자. 해외 가면 살 빠지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들은 사실, 고등학생 때 '대학 가면 살 빠져. 남자 친구 생겨'라는 막연한 근거 없는 말과 똑같은데. 뭘 믿고 상상 속에 살고 있었을까?
최근 들어 주변에서 정말 많이 듣는 얘기가 있다. 비행기 값이 올라 부담된다는 나의 말에 "나 같으면 안 간다" 라던가, "진짜 가는구나. 안 가면 좋겠는데" 라던가, "가서 국제연애도 엄청하고 즐겨" 라던가. 하나같이 나를 온전히 아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다. 정말 나를 알고 있는 친구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나를 걱정하는 그들의 표현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나의 한 쪽 면만 보고 판단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 말에 내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타국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건 어릴 때부터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남자 친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나는 사람들에게 남자 때문에 한국을 뜨는 여자일 뿐이었다. "가서 결혼 못하겠는데", "결혼하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더 어울려요"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내가 예민한 것인지 그들이 무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결혼을 한 적도 없는데 결혼한 게 더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어찌 알고 하는 말인지? 캐나다를 결혼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결혼을 못하다니? 안 한다와 못한다는 엄청 다른 거 아닌가?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