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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하 Jan 11. 2020

쿵 하고, 툭 하고, 악 하고, 훅 하고

화요일의 시 <화시, the flower season>

unsplash @arisu_view


쿵 하고

쓰러진 박스에서 튀어나온 건 허름한 탄식이었다
손수레 위로 짊어진 짐에 짓눌려 고개가 꺾였다

하루하루 쌓아 올린 탑이 동전 한 닢에 무너진다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서야 겨우 숨을 뱉는다


툭 하고

헛기침 몇 번에 어금니가 바닥에 떨어진다

손수레를 힘껏 밀 때마다 내딛는 발꿈치가 금세 닳았다

허리를 접었다 펼 때마다 얼굴에 깊은 골짜기가 새겨진다

지우개처럼 그림자 부스러기만 남기며 차츰 지워진다


악 하고
목안으로 내지른 고함을 콜록거렸다

망가진 몸뚱이가 헐값에 고물상으로 팔린다

낡은 세간을 마련하려면 몇 톤의 종이 탑을 세워야 한다

활활 타고 남은 보얀 재 무더기에 이름을 묻고 제를 지낸다


훅 하고

황망히 잠에서 빠져나오다 문틈에 꿈이 끼어 놓쳐버렸다

조각난 화병 위로 쏟아져 내린 시든 꽃잎이 가련하다

짐을 지고 오르는 이의 손에 쥐어진 트로피는 바닥난 소주 한 병

오늘의 새벽은 이다지도 가급하다


어제의 어제의 어제 뜬 태양이 낳은 기시감

힘차게 손수레를 밀었는데 제자리에서 헛돌았다

바퀴는 누가 훔쳐가고 대신 쳇바퀴를 달아 놓았다

아침이 오자 빌딩의 높이 순서대로 그림자가 차곡차곡 쌓인다

그림자가 여느 그림자 위로 드리우고 짓누른다


켜켜이 겹쳐진 칠흑의 수렁이 마침내 최후에 안식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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