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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23. 2021

내 딸은 어느 밥상에 앉게 될까

어김없이 명절


20대 시절에는 막연하게 30대부터 세상살이 대부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의 잔소리로부터 꽤 벗어날 것이니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취직을 해서 돈을 벌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도 가질 테니 더욱더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나의 30대를 뒤돌아보면 그럭저럭 그 기대만큼 살아왔다. 회사의 굴레 안에서 시간적 자유는 고스란히 조직에 바쳤지만 그래도 그 대가로 돈을 벌었다. 열심히 일했고 연차도 열심히 썼다. 그 돈과 연차를 써서 가고 싶은 여행도 많이 갔고 읽고 싶은 책도 부담 없이 사들였다.


그런데 결혼 후 시부모님과 만나는 일정 때문에 내 시간(특히, 주말) 사용에 제약을 받았다. 평일에 일하면서 주말만 기다리는데 그 주말마저 일부를 시댁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 갑갑했다. 이것은 신혼시절 남편과의 긴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조율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결국 내 대부분의 자유는 박탈당했다.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었고,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했다. 내가 외출해야 할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붙여놓고 나가야 하는데 이 때문에 여전히 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그래, 이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아이들은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어차피 몸이 메여있는 것은 잠시 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괴로웠던 사실은 따로 있다. 나는 그대로인데 엄마로서의 나에게,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그 옛날 못 배울 시대에 태어난 것이 아니어서 원하는 만큼의 교육 기회가 주어졌다. 남자와 다를 것 없이 사회적 성장 욕구에 대해서도 감추지 않고 마음껏 추구하도록 배웠다. 차별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남자와 평등하게 커왔다. 그런데 그 평등이 한순간에 깨진 시점이 바로 출산의 국면이었다. (그리고, 육아휴직 후, 승진 대상자 중 최하위 점수를 기록하며 누락 당하고 남자 동기들보다 늦게 승진한 것) 아이를 낳고 나니 이제 다들 나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아이만 잘 키워내야 하는 엄마'로만 나를 대한다. 나도 맛있는 음식 먹을 줄 알고, 육아 외에도 관심사가 많다. 더 깊고 크게 성장하고 싶은 한 개인이며 다양한 대화도 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에게 딱 아이 돌보는 보모 정도의 관심만 보인다.


이런 내 처지를 가장 여실히 깨닫게 되는 때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바로 명절날이다. 나는 친정집에서 명절을 보낼 때 소위 '메인 밥상'에서 남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결혼한 지금은 다르다. 이번 추석에 우리 부부가 시댁에 들어섰을 때, 삼촌들의 큰 환대를 받은 남편은 메인 밥상으로 안내를 받았고, 나는 주방 식탁에서 시어머님을 비롯한 숙모님들 틈에 앉았다. 내가 먹는 것보다도 아들에게 갈비를 뜯어주는 것이 더 큰 임무였다. 친정집에 가고 싶었다. 손주 입에 들어가는 것 못지않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잔뜩 챙겨줄 우리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딸의 미래와 나의 과거가 겹쳐 보일 때가 있다.  딸은 미래의 명절에 어느 밥상에 앉게 될까. 나는 이미 글렀다. 하지만  딸은 메인 밥상이든 주방 식탁이든  오빠와 같은 자리에 앉도록 만들어줄 거다.  딸이 살게   시대는  지금과 다르겠지. 지금보다  괜찮은 세상에서 살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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