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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Nov 06. 2024

나에게 온 선물

가장 '나'다운 '나'를 알게 해 준 소중한 그것


"나는 결혼해도 경력단절되고 그렇게 나를 포기하며 살고 싶지 않아."

"뭐? 그럼 아이는 어떻게...?"

"아이는... 나중에... 갖고 싶을 때 입양하지 뭐"


결혼 전 나와 남편의 대화 내용이다. 그렇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선배와 지인들의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어영부영 그 문제에 대한 결론 없이 결혼을 했고, 거의 1년이 지날 무렵 임신을 하게 됐다.

"(울먹울먹) 여보. 이거 봐바..."

두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터기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기쁨과 설렘, 긴장감 그리고 예상한 대로 나를 내려놓고 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두려움.

그래. 어쩌면 희생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한 생명에 대한 준비 안된 책임감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마치 공포영화 예고편을 보는 듯 임신 30주가 넘자마자 조기 출산 위험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갑작스러운 진통으로 무통주사 없이 8시간을 버티며 출산을 했다. 엄마의 예민함을 똑 닮은 아이는 밤. 낮이 바뀐 것은 물론 등센서를 달고 태어나 한 시간을 안아 재워도 30분 만에 자고 일어났다.


반복되고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6개월 된 아이를 안고 문화센터를 다녔지만 그곳에서도 유일하게 내 치맛자락을 잡고 놓지 못하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됐다. 주변 어르신들은 낯가림이 심한 아이를 보며 '엄마와 너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아이가 사회생활을 해야 낯가림이 좀 나아져.'라는 현실과 다른 말씀에 주변 문을 닫고 집에만 있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역할이 처음인지라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들었다. '나 그만하면 안 돼? 잠 좀 더 자면 안 돼? 앉아서 편하게 밥 먹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 모든 표현은 응어리로 뭉개진 채 매일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이 부러웠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나를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놓고 아이 쿠키 하나를 위해 내 커피 한잔을 포기했고, 옷과 화장품은 사치였다. 아이가 말을 시작한 후에는 영어유치원과 다양한 전집 정보를 살피느라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처럼 이쪽저쪽으로 떠밀려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무슨 색을 제일 좋아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제목은 뭐야?", "엄마는 세상에서 뭐가 제일 맛있어.?" 아이의 다양한 질문에 단 한 개도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 서서히 서서히 작아지다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다시 나를 찾고 싶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무슨 색인지, 즐겨 부르던 노래가 뭐였는지. 다시 찾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였던 아이가 둘이 되고, 이민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으며 힘겨운 일상을 보내게 됐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가 표정 없이 지쳐있는 내 표정을 읽고는


엄마! 슬퍼? 왜 얼굴이 슬퍼?


응.................?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내가 우울하구나. 어쩌면 우울증일 수도 있겠구나. 나 때문에 집 안 분위기가 가라앉는구나.'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10년도 넘은 예전 음악을 찾아 듣고 따라 불렀다. 요리를 하다가 국자를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의미 없이 쳐다보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유행어를 따라 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가 새로운 듯 서로 마주 보며 웃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원래의 내 모습을 찾아갔다.


지금의 나는 흥이 많고, 장난기가 많은 엄마이다. 아이들과 게임하는 것이 즐겁고, 침대에서 같이 뒹구는 것을 즐긴다. 거실이든 부엌이든 국자를 들고 춤을 추면 아이들도 따라 추며 집은 곧 클럽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을지 모를 선물.

그 선물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내가 혼자 짊어져야 할 책임감과 두려움이 아닌 나를 가장 나다운 '나'로 살게 해 줄 예쁜 아이가 들어있었다. 그 아이가 나에게 온 지 벌써 10년. 이제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감정을 전달하지만 결국에는 그것도 너와 내가 함께 지내야 할 길인걸.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선택하고 아이를 갖지 않았다면, 이런 벅찬 느낌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렇게 큰 사랑을 느끼고 또 나눠줄 수 있었을까? 너로 인해 나에게도 '엄마가 처음이었던 엄마'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삶에 감사해. 날 닮은 네가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렇게 많이 사랑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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