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
나 너 좋아해.
같은 고백 한번 없이 친한 친구처럼, 연인처럼 그렇게 10대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었어요.
어두운 길을 걸어가야 할 때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났고, 맛집에 가면 같이 먹고 싶어 기억해 두고,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할 때면 같이 보러 가자고 전화를 했었죠. 그 역시 나를 챙겨주었고,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통화를 하곤 했어요.
그러던 그가 부모님과 먼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그는 저에게 상자 하나를 건네줬어요.
그 안에는 그가 아끼던 물건 몇 개와 빈 다이어리가 있더라고요. 저는 그날 이후 그가 생각날 때마다 다이어리 한 장에 일기인지, 편지인지 모를 내용들을 가득 채워나갔어요. 가끔은 좋아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고, 가끔은 투정 섞인 이야기를 적어놓았어요.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채우고도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우연히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터라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나도, 그도 우리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흐른 시간만큼이나 우리 사이의 간격도 멀어져 있었어요. 함께 좋아하던 노래도 달라지고,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져 버렸더라고요.
그렇게 멀어져 버린 그에게 그동안 제가 적어두었던 다이어리를 돌려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날 이후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나고, 각자의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문득 그 애는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첫사랑,
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예쁘고, 설레는 단어인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인연과 만남에는 언제나 끝이 있는 법이죠. 짧게 끝이 나든, 길게 끝이 나든 나에게 좋은 추억과 기억으로 남았다면 그 인연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뜨거웠던 열정과 설렘, 감동과 눈물 모두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준 것들이니까요.
마음 한켠에 잘 넣어 두었다가 가끔씩 좋았던 어릴 적 기억으로 꺼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지금 포춘 쿠키 한 개와 함께 예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셔도 좋아요.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피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