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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나한테 인사한 거야?

제2화, 왜?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10:00 AM


날짜 계산까지 마치고 보낸 이삿짐이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그 일주일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일상에 감사함이 전해진다. 반가운 트럭이 마당 앞에 주차한다. 거대한 마오리계 아저씨들이 신발을 신은채 저벅저벅 집 안으로 들어와 이사 박스들을 거실에 쌓아두기 시작한다.


뚜벅, 뚜벅, 털썩!

"아앗! 아… 아니, 신발!"


영어보다 먼저 튀어나와 버린 한국어에 당황한 나머지 말을 하다 멈춰버렸다.


짐 들어온다고 청소기를 밀어둔 깨끗한 집안이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한다.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쌓여 눈만 껌뻑이고 있는 이사 박스들, 흙과 잔디로 뒤엉킨 거실 바닥. 그 혼란 속에서 직원들의 동선이 선명히 읽힌다.

'하아' 답답함이 짧게 입으로 터져 나온다.

'저것들을 정리하려면 먼저 아이부터 낮잠을 재워야 해' 전쟁터에 나가듯 장엄한 발걸음으로, 총을 조립하듯 재빠르고 정확하게 유모차를 조립한 뒤 집을 나선다.


10:47 AM


씩씩하게 대문을 나섰지만 문이 닫히자마자 낯선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새 나라에 도착한 지 일주일. 어색하지만 동네를 둘러보며 유모차를 밀어낸다. 길마다 표시된 OORd(OO로드)를 레이저 쏘듯 눈여겨보면서 돌아갈 길을 기억해 본다. 구글맵이 활성화되는 곳이라 헨델과 그레텔처럼 돌멩이로 온 길을 표시할 필요는 없다. '나 길치인데, 정말 다행이야.'


오전이라 그런지 동네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다. 조용함을 넘어 고요하다.

'동네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오히려 사람 만나면 깜짝 놀라겠어.' 침을 꼴딱 삼키며 커브를 돌아서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과 마주쳤다.

"헉!"

"Oh, Hi, how are you?"

놀란 나와 달리 맞은편 여성은 운동을 하는 듯 빨갛게 상기된 볼을 띄고 있었다. 햇빛에 비친 파란색과 초록색 중간쯤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깜빡인다.


으응?
나...?
지금... 나한테 인사한 거야...?

주변을 살폈다. 두리번. 두리번.

혹시나 그녀의 지인이 내 뒤에서 따라오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 주변에 인기척조차 없었으니 아마도 나였던 것이 분명하다.

"H... Hi... 하하하하하하.." 눈은 울상으로 입꼬리만 올린 채 어색함과 당황함을 온몸으로 발산시키기 시작했다. 부끄러워진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1초가 1시간처럼 어색하게 흐르고 난 뒤 그 사람과 지나칠 수 있었다. '날… 아는 사람인가?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그런데 나한테 인사를? 왜....?'


7:26 PM


"그냥 인사하는 거야. 길에서 만나도 다들 인사해."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이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그냥… 인사…’ 오해는 풀렸지만, 낯설고도 어색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면 의심부터 하곤 했다. ‘뭐야, 누구야? 설마… 도를 아십…?‘

나는 낯선 이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날카롭게 경계를 세우고 있음을 말투와 표정에서 나타내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길 가다 눈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웃으며 인사도 하고, 스몰토크도 하는 문화였다. 몰랐다. 내가 그런 문화 속에 들어가 살 것이라는 것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 관광객이에요.'라고 표현하며 유명지만 돌아다녔으니 외국의 생활 문화는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한국 문화와는 다른 이곳 문화를 배우기도 전에 몸 소 겪은 것이다.

‘외국 스타일은…무슨…‘ 큰 오해와 착각임을 깨달았다.


며칠 전 이런 유튭을 보게 됐다.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분(교민인듯한)이 길거리 외국 사람들에게 짧게 칭찬하며 지나가는 영상이었다.

“Nice shirt!”, “You have a beautiful smile.” 등 칭찬의 말을 하면 상대가 밝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화면이었다. 그분이 한국에서도 똑같은 영상을 찍었는데 칭찬을 들은 몇 명의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이상하다는 듯 그냥 지나쳐버렸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굳이 인사를?
VS
다 같은 동네 사람이잖아.
인사정도는 해야지


정 반대인 두 개의 문화가 나를 중간에 놓고 누가 맞냐고 묻는 것 같았다.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좀 더 다정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화를 한국에 적용시킬 수는 없다. 서울은 인구가 많아 길에서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한다면 아마도 해가 져버릴지도 모른다.


나라마다 그곳의 생활 문화와 관습, 전통 등이 있다. 외국 길에서의 인사는 낯선 사람도 존중하고 인간적인 연결을 유지하려는 사회적 관습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들은 개방적이고, 직접적인 소통을 중요시 한다. 인사와 스몰토크가 관계의 시작인것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가 우리 문화와 다름을 인정하고, 좋은 것은 배우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배웠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나에게 펼쳐질 미래가 갑자기 두려워졌다.


모르는 사람한테 웃으며 인사하기?! 앞으로 계속해야 할 텐데 너무 어색하잖아! 외국 생활, 큰일 났네!


외국(뉴질랜드) 스타일 Tip, 길을 걷다 또는 엘리베이터 등에서 맞은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웃으며 인사를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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