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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좀 벗어줄래요?

제3화. 발페티시가 있는 건 아니고요.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부엌과 화장실을 제외하고 바닥이 전부 카펫으로 깔려있는 뉴질랜드 하우스.

첫째 아이의 비염과 아토피 때문에 집 전체가 카펫인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만으로 고른 첫 번째 집은 마루 바닥에 방만 카펫이 깔린 집이었다. 겨울에는 온돌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한국에서처럼 청소기와 걸레를 사용해 마루 바닥을 깨끗하게 유지하며...

그 일과 마주치기 전 까지는




지난 편 "나? 지금... 나한테 인사한 거야?"편에서도 살짝 언급됐던 신발. 그놈의 신발이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오리(뉴질랜드 원주민)계 아저씨들이 신발을 신은 채 성큼성큼 집으로 들어와 이삿짐을 내려두고 나갔더랬다. 마루 바닥에 선명하게 그려진 그들의 동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집에서도 신발 신는 문화

어렸을 때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다. 그저 내 인생과는 다르다며 관심 없었는데 그 일이 예고 없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자 당황함을 숨길 수 없었다.


옆집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일이다.

옆집 남자아이 Jack과 그의 여동생 Lara. 둘은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다 친해지게 됐는데, 어느 날 "Hi~" 밝은 인사와 동시에 신발을 신은 채 서슴없이 우리 집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응…?’

거침없이 흔들리는 동공을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이 집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거실에 흙이 흩어진다. 아이들을 불러다 신발을 벗기기도 전에 다시 마당으로 우르르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의 수업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집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며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데 이상한 느낌이 나의 시선을 밑으로 잡아당겼다. 신발을 신은 누군가가 우리 집 거실에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은 여러 번 봐도 참 무섭 아니, 당황스럽다.


몇 번의 경험을 겪은 후, 외국인이 우리 집에 들어올 때마다 "Would you mind taking your shoes off before coming in?"(실례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와 줄 수 있을까요?) 라며 요청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몰랐다며 흔쾌히 신발을 벗어준다. 고마우면서도 멋쩍은 상황이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있다.

내가 외국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갈 때면 문 앞에서 한 번은 머뭇거리게 된다.

'이 집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문화일까? 신고 들어가는 문화일까?'

여러 번의 경험 끝에 노하우가 생겼다. 나만 초대받았을 경우에는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여러 명이 초대되었을 경우에는 현관 앞에 신발이 놓여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반면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는 요청을 받으면 너무 낯설다. 신발을 처음 신은 강아지들의 뒤뚱거리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카펫의 폭신함이 신발 밑으로 느껴지는데 뭔가 계속 벗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한국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 친구들은 도대체 집에서 신발을 신는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문화, 위생 개념, 기후, 주거 구조에 따라 다르다. 그 중에서 문화적 차이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집과 외부의 경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보통 동양에서는 외부의 더러움을 안으로 들이는 것을 꺼려하지만, 서양에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뉴질랜드는 밖에서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많으니 집 안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바닥 생활을 하던 한국과 달리 서양은 침대, 소파 중심의 생활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바닥의 청결도에 덜 민감하다.


문화는 이해를 했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닦아 둔 집 안에 누군가 신발 신은 채 들어온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적어도 내가 사는 이 집에서만큼은 말이다.


외국인들이 나를 보며 '왜 자꾸 신발을 벗으라고 하지? 혹시... 발페티시가 있나?'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집 안에서 신발 신는 만큼은 양보 못하겠다!


외국 생활 Tip! 외국인 친구가 집 안에 신발 신고 들어올 수도 있다. 너무 놀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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