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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Aug 17. 2023

페인팅을 하다

혼자서도 둠칫 둠칫 1.


페인팅하는 것 어렵지 않아요. 그냥 한번 칠해보세요.


유튭에서 흘러나온 중년쯤 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내 귀에 조용히 각인됐다.

이 나라에 이사 와서 관심을 갖게 된 가구 페인팅. 인터넷에서 페인팅 수업 영상을 찾아 구매를 했고, 밤마다 영상을 살펴봤다. 수업에서는 도구와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알려줬지만 사실 나를 움직인 것은 유튭에서 나온 그 아주머니의 한마디였다.


내가 구매한 페인트 수업 영상(좌), 내가 원하는 페인트 컬러로 섞어주는 매장 직원(우)


어려서부터 끼적거리며 색칠하는 것을 좋아해서 컬러링 북, 컬러링 캔버스도 해봤던 터라 무작정 Bunnings Warehouse로 달려가 페인트, 롤러, 붓, 트레이, 등의 재료를 샀다. 매장에 진열된 다양한 색상의 페이퍼 중 원하는 컬러를 찾아 직원에 보여주면 찾아주기도 하고, 섞어 만들어주기도 한다. 성격 탓에 고작 몇 개 고르고 나오는데도 몇 시간은 흐른 듯했다.


내가 처음으로 페인트 칠을 했던 것은 오래된 책장이었다. 해외로부터 제조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인 만큼 가구를 살 곳이 적기도 하고, 가격이 비싸 보통 중고거래를 통해 가구를 사고 파는데, 그렇게 저렴하게 산 책장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혼자서 책장의 책을 다 꺼내고, 2층에서부터 씨름하며 가지고 내려와 차고에 눕혔다. 그리고 준비라고 할 것도 없이 민트색 페인트를 바르기 시작했다.


롤러를 사용했는데 특별한 요령은 없었다. 그냥 롤러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발랐다. 그런데 그 느낌이 너무 부드러웠다. 그리고 정해진 부분에 색이 빼곡히 차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아마도 결과를 바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작업이라 내 성격에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말리고, 덧칠하기를 반복해서 완성된 책장은 딸의 방에 배치됐다. 누르스름하고 올드한 나무 느낌의 책장이 산뜻하고, 깨끗하게 변하니 아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책장을 시작으로 집에 있는 모든 나무 가구는 모두 색이 칠해지기 시작했다. Bedside table을 비롯해 서랍장, 의자, 여러 개의 책장 등,

시간이 흐르고, 페인팅된 가구의 수가 늘어갈수록 프라이머나 커버 스프레이 등의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활용도를 높였다. 차고에서 마르고, 덧칠하는 며칠 동안은 그 가구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도 있지만 나는 집 분위기가 화사하게 바뀌는 게 좋았다. 집에 온 손님들도 새로운 컬러의 가구를 어디서 샀는지 묻곤 했다.



너의 작품을 소개해도 될까?

어느 날 Resene Paint라는 페인트 회사에서 DM이 왔다. 그동안 다양한 페인트 작업을 하면서 그 과정 및 결과를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했는데 그것을 보고 자회사 Magazine에 내 가구 사진을 올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Covia-19으로 접촉이 안되던 시기였기에 담당자와 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건네줬다. 그리고 다음 달 Magazine ‘habitat'에 내 가구가 나왔다.

Magazine에 실린 가구 사진(좌), 새로 페인팅한 가구들(중간),(우)



지금은 집에 더 이상 색칠할 가구가 없어서 인테리어 소품들을 색칠하고 있다. 저렴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을 사서 집 분위에 맞게 또는 내 취향에 맞게 페인팅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소하게나마 집에서 페인팅을 하고, 깨끗하게 사용하다가 더 이상 필요 없을 때 중고시장에 저렴하게 판매를 한다. 그리고 또 내가 필요한 가구를 산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둠칫 둠칫거리며 인생을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행동을 통해 ’해보길 잘했어!‘가 되는 값진 경험이었다. 나는 오늘도 페인팅할 물건이 없는지 집안을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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