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둠칫둠칫 2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아이펜을 꺼냈다.
나의 어렸을 적 꿈은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미술학원은 오래 다닐 수 없었다. 디자이너 학과는 경쟁률이 높아 다른 과로 입학했다. 그렇게 현실에 맞춘 듯, 현실을 피하는 듯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끼적끼적 그림 그리는 게 좋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온라인 페인트 수업 종료 후 일러스트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툴 사용법과 그리는 방법을 익혔다.
그러고 나서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어떠한 형체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클릭해 보고, 유튭도 찾아보면서 그려나갔다. 처음 그린 그림은 내가 보기에도 웃긴 도형 모음이었다. 두 번째도 별 볼일 없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래도 내 손 끝에서 그려지는 선들과 색상들이 쌓여가면서 조금씩 내가 하고자 하는 그림들을 표현해 갔다.
한 번은 내 그림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출력해 액자에 걸어뒀다.
출력은 Warehouse Stationery에 찾아가 그림 파일을 메일로 전송하고, 출력 후 결재하고 찾아오면 된다. 이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처음 출력할 때는 심장이 콩닥콩닥 했더랬다.
소소한 도전을 통해 내 작품을 하나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동네 커뮤니티에도 액자를 판매한다고 글을 올렸다. 결과는 참혹하게도 단 한 명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 다들 액자 직접 만드나 보다. 아니면 액자를 싫어하나?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는데 너무 뻔뻔하게 행동했었던 것 같다. 다시 정신 차리고, 그림을 연습하고 있다. 간단한 동영상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다.
요즘에는 내 그림을 핸드폰케이스나 물병 등에 올려 제작하기도 한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배송비가 무척이나 비싸 온라인판매는 못하고, 가끔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정도이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잡다한 생각 속에서 벗어나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멋지게 그려지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최근에는 브랜드의 이름이나 레터를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 같다. 하지만 좋아서 시작한 그림에 대한 ‘꾸준함’이 앞으로를 결정지어 줄 것임은 틀림없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혼자서 둠칫둠칫 그림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