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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Aug 22. 2023

일러스트를 하다

혼자서도 둠칫둠칫 2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아이펜을 꺼냈다.


나의 어렸을 적 꿈은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미술학원은 오래 다닐 수 없었다. 디자이너 학과는 경쟁률이 높아 다른 과로 입학했다. 그렇게 현실에 맞춘 듯, 현실을 피하는 듯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끼적끼적 그림 그리는 게 좋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온라인 페인트 수업 종료 후 일러스트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툴 사용법과 그리는 방법을 익혔다.


그러고 나서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어떠한 형체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클릭해 보고, 유튭도 찾아보면서 그려나갔다. 처음 그린 그림은 내가 보기에도 웃긴 도형 모음이었다. 두 번째도 별 볼일 없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래도 내 손 끝에서 그려지는 선들과 색상들이 쌓여가면서 조금씩 내가 하고자 하는 그림들을 표현해 갔다.


한 번은 내 그림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출력해 액자에 걸어뒀다.


출력은 Warehouse Stationery에 찾아가 그림 파일을 메일로 전송하고, 출력 후 결재하고 찾아오면 된다. 이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처음 출력할 때는 심장이 콩닥콩닥 했더랬다.

Warehouse Stationery에서 그림 출력, 캔버스에 출력할 수도 있다.


소소한 도전을 통해 내 작품을 하나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동네 커뮤니티에도 액자를 판매한다고 글을 올렸다. 결과는 참혹하게도 단 한 명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 다들 액자 직접 만드나 보다. 아니면 액자를 싫어하나?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는데 너무 뻔뻔하게 행동했었던 것 같다. 다시 정신 차리고, 그림을 연습하고 있다. 간단한 동영상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다.


요즘에는 내 그림을 핸드폰케이스나 물병 등에 올려 제작하기도 한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배송비가 무척이나 비싸 온라인판매는 못하고, 가끔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정도이다.

내 얼굴을 가득채운 핸드폰 케이스(좌), 태극기와 뉴질랜드 국기를 넣은 물병(우)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잡다한 생각 속에서 벗어나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멋지게 그려지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최근에는 브랜드의 이름이나 레터를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 같다. 하지만 좋아서 시작한 그림에 대한 ‘꾸준함’이 앞으로를 결정지어 줄 것임은 틀림없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혼자서 둠칫둠칫 그림을 그린다.


프링글스(좌), 구글(중), 애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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