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도감]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지하철 게시판에 붙어있던 안내문이다. 인스타에서 유명한 김나훔 작가가 부산교통공사와 안전 포스터 작업을 한 모양이다. 지하철 게시판을 꼼꼼하게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것도 웃으면서.
나는 유머러스한 사람이 부럽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좀 재밌게 하고 싶은데 역시 마음처럼 되진 않는다.
평소 신중한 사람이 적재적소에 위트를 통해서 재밌는 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고는 다시 진지하고 엄격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런 것들이 그를 더 듬직해 보이게 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유머러스한 사람들 주위엔 다른 공기가 흐른다.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재밌게 말하는 이들은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준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말을 적절한 타이밍에 재치 있게 한다. 어색함 없이.
유쾌한 그들의 말이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한다. 그냥 일차원적으로 웃고 마는 그런 재미가 아니라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유머를 한다.
유머러스한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고, 또 많은 경험을 가진 그 여유로움으로 유머를 구사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명제가 나온다.
그럴 수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이런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기에 우리에게 크게 와닿는 것 같다. 재미있는 사람이 가볍게 치부되기 쉽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들은 누구보다 묵직하다.
내가 생각하는 유머는 가볍고 무거운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그 양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지하철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는 노상 일어난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공간에서의 가장 중요하고 무거워야 할 안전 문제를 재미있는 그림으로 말해주니 한 번 더 눈이 간다. 눈이 더 간만큼 인식하게 된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지하철 게시판을 보며 웃게 하고는 동시에 백팩과 발 조심해야겠구나, 내 표정도 조심해야겠구나, 하게 만든다. 그런 힘이 부럽다.
김나훔 작가의 인스타를 들어가서 다른 작품들을 보며 히죽거리는 지금이 너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