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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드로잉 Aug 27. 2020

미술학원 4B 연필이 항상 뾰족한 이유

연필깎기 기술을 얻는 건, 덤

입시미술 시절 항상 소묘를 하는 날이면 조금 일찍 소묘실에 도착해 책가방을 내려 놓고 항상 하던 일이 있다. 바로 4B연필을 길게 깎는 일이다. 연필을 깎아 놓은 모양만 봐도 초보자인지 아닌지 금방 티가 난다. 오래 그림을 그려본 학생들은 연필 깎는 기술도 거의 수준급이다. 리드미컬하게 한 손으로는 연필을 돌리고, 한 손으로는 칼날을 밑에서 위로 조심스럽게 밀어 올려 흑연의 끝이 아주 길고 뾰족하도록 우주의 온 힘을 모아 집중해야 가능한 고급기술이기 때문이다. 간혹 실기 시간에 졸리거나 지루해질 때 연필 깎는 척하고 선생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잠시 쉬어도 되는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보통 연필은 4B처럼 앞자리에는 숫자, 뒷자리에는 H 혹은 B와 같은 알파벳 대문자가 있는데 H는 단단한 심 B는 묽은 심을 대표한다. 단단하다는 것은 그만큼 종이에 그어 봤을 때 연필심과의 마찰로 인해 발색하게 되는 그 세기를 말한다. 단단한 H는 발색이 쉽지 않다. B는 반대로 종이 위에서 쉽게 뭉그러지기에 발색이 비교적 쉽다. 그래서 앞자리의 숫자가 높아질수록 그은 선이 연하며 얇고 B의 숫자가 클수록 선이 진하고 두꺼워진다. 소묘에서 4B 연필을 사용하는 이유는 적당한 두께로 쉽게 발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architectscornerla.com



이런 이유로 선택 받은 4B 연필을 그냥 길게도 아니고 정말 길쭉하고 뾰족하게 깎는 이유는 분명하다. 뾰족한 연필의 끝은 그리려는 물체의 아주 작고 세부적인 묘사를 할 때 반드시 필요하고, 손에 힘을 쥐어 연필을 누르면 묽는 심이 뭉그러지면서 연필의 한 면이 납작해지는데 이 때는 전체적인 밑색을 깔거나 짙은 명암을 표현할 때 적당하다. 계속해서 연필을 쥐고 이런식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연필은 또 짧아져 있다. 바로 그때가 다시 연필을 깎아줘야 하는 타이밍이다.


끝이 뾰족하다보니 힘 조절을 하지 못하면 허무하게 부서질 때도 있으니 손끝의 힘을 느끼며 선을 긋는 연습도 필요하다. 제일 좋은 것은 흑연과 종이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며 표현되는 명암을 표현할 때 그 순간의 작은 쾌감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조용한 실기실에 퍼지던 그 시절의 연필소리가 그 때는 입시의 무게로 인해 압박감처럼 느껴졌지만 수 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하루에 그림을 6시간 이상 그리던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문득 톰보우 연필과 지우개를 우연히 볼 때면 익숙하게 듣던 그 소리가 떠오른다.


<메일이미지 사진출처>

https://steemit.com/kr/@leemikyung/2w2b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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