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사 유학을 결심하다
38살, 너무 적지도 그렇지만 많지도 않은 나이. 작지만 탄탄하게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동안 커뮤니케이션 분야라는 큰 범주 안에서 14년 동안 꾸준히 걸어왔다. 마케팅과 매니지먼트의 학부 전공을 초석으로 삼아 국내 대기업 해외마케팅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와 한국어 영어 이중언어로 국제행사를 진행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거쳐서 통번역과 교육,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중 나는 한국의 생활을 내려놓고 미국 박사 유학을 택했다. 박사 유학은 오래전부터 열망하던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속 아주 깊숙이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함은 있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 스스로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정과 실행을 예상하진 못했다.
나는 왜 갑자기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떠나기로 했을까?
첫 번째 이유, 아들과 시간 보내고 싶은 마음. 이혼 후 초등학교 1학년 아들 입학부터 떨어져 있게 되었다. 매주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아들과 시간을 보냈다. 매주 주말을 기다리며 살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느 순간, 내 사업을 아무리 키워도 바쁜 일로 인해 아들이 성장하는 함께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고 싶었다.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엄마가 아닌 아들과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유학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이 말은 대학원 지원서 (SOP)에 쓰진 않았다.
두 번째 이유, 국제행사 진행자 양성 교육프로그램을 론칭하면서 국내 국제대학원에서 겸임교수직으로 수업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다른 대학원에서도 제안을 받았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시작하면, 나의 자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채워야겠다는 동기가 생긴다. 우연하게 그날은 커뮤니케이션 특수 대학원 입학 원서 마지막 날이었다. 집과 가장 가까운 학교에 지원했고 석사 과정으로 야간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커뮤니케이션의 배경이 미국이기에 대부분 번역서로 공부했는데, 아쉬움이 많았다. 학부 시절 나와 맞았던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생각났고 유학을 가기로 했다.
세 번째 이유, 더 나은 마흔 이후의 삶을 위한 투자, 마지막 버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 후에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미국 와서 공부해보니, 배움에 늦음은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내가 동기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지만, 유학하면서 나이를 물어보지도 않는다. 커리어의 단절이 아닌 앞으로 나아갈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한다. 학부를 미국에서 졸업했기에 조금 수월하게 유학을 결정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영어를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생활하는데 불편함 없이 글을 읽고 쓰고 말할 줄은 알기 때문에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유학을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박사 유학을 오면서 다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