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수에즈 운하에서 선박 좌초 사건이 있었다.
지금은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운하의 역할과 중요성을 새삼 돌아본다.
전 세계적으로 운하들이 많이 있다.
그중 유명한 운하들 몇을 꼽자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니하운 운하나 베네치아 운하 등이 있고, 바다와 바다를 잇는 운하로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의 파나마 운하가 있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고,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한다.
운하 구조는 대부분 ‘수평 운하’다.
배들이 운행하는 물길이 대부분 평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는 ‘유문 운하’로 수문이 있다. 이유는 물길에 높낮이가 있어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문을 설치하고 물을 가둬 물의 부력으로 배를 높거나 낮은 곳으로 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번에 선박 좌초로 관심이 집중된 수에즈 운하는 그 길이가 약 190km에 이른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며 소유권은 이집트에 있다. 수에즈 운하 덕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이 약 1만 km나 단축되고, 시간은 무려 20여 일이 줄게 된다.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빙 둘러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 관리의 탄탄대로가 된 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는 10여 년간 공사로 1869년에 완공되었다.
유명한 작곡가인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는 수에즈 운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곡 중 ‘개선행진곡’은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매우 친숙한 곡이다.
수에즈 운하와 같은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때문에 국가가 부자여야 하는데, 사실 이집트는 당시 부유한 국가가 아니어서 첫 시작은 프랑스가 맡았다. 프랑스 자본이 절반 이상, 이집트 정부가 절반 조금 안 되는 돈을 부담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수에즈 운하 운영에서 손을 뗀다.
이때 그 기회를 잡은 나라가 영국이다. 수에즈 운하의 대주주가 된 영국은, 아시아로 향하는 탄탄대로를 얻었다. 당시 영국은 많은 나라를 식민 지배하고 있었는데 수에즈 운하로 인해 아시아 식민지국 관리가 상당히 용이했으리라 생각된다. 수에즈 운하가 없었다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를 포함한 여러 식민지 관리를 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또 다른 역사는 러일전쟁이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쓰시마에서의 해전은 일본이 승리한 싸움이다. 러시아는 이 싸움에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했기에 전쟁 상황이 더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전쟁의 발단은 이렇다.
러시아가 만주의 자원을 착취하는 데 일본을 배제하자, 일본 함대는 뤼순항과 한국의 제물포에서 포격과 어뢰 공격을 가해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켰다. 이에 격노한 러시아는 발트 함대를 불러들여 보복에 나선다. 발트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정을 수리하고 수병을 훈련시킬 기회를 얻고자 함이었다.
수에즈 운하는 영국의 영향력이 막강한 때였고. 영국은 일본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했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약 200여 일 동안 3만 km나 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발트함대는 쓰시마 해협을 일본 몰래 빠져나간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정들이 수리되고 수병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때까지 일본 함대와 교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본 순양함에 적발됨에 따라 전쟁은 시작됐다.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쓰시마에 도착하기까지 배에서 보낸 200여 일의 시간. 지칠 대로 지친 군인과 바로 전쟁터로 나온 일본 군인과의 싸움이 똑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운하마다 사용 가능한 배의 크기가 따로 있다
운하들은 바다가 아닌 이상 강처럼 폭이 존재한다. 그래서 운하나 항구에 따라 사용 가능한 배의 크기가 정해진다.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운하나 항구 기준에 따라 생겨난 것이 수에즈막스(Suezmax), 파나막스(Panamax), 케이프사이즈(Capesize)이다. 수에즈막스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화물선 최대 크기이고, 파나막스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화물선의 최대 크기를 말한다. 케이프사이즈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에는 배가 너무 커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남쪽에 위치한 곶(cape)인 희망봉을 돌아서 운항해야만 하는 선박이다. 그 지명을 따서 케이프 사이즈(cape size)라고 이름 붙었다.
또한 바람이 거의 없는 운하를 통과하는 배가 많아지면서 거센 바닷바람을 이용하는 범선이 줄어들고, 증기선이 대세가 되기도 했다.
현재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가 전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된 동기는 이집트 민족주의 지도자의 역할이 컸다. 아스완댐 건설비용 마련이 수에즈 운하의 전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세르 대통령은 영국 손에 넘어갔던 수에즈 운하를 1956년 일방적으로 국유화한다. 영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났고 이스라엘과 프랑스, 영국은 한 편이 돼서 이집트를 공격했다.
이것이 2차 중동전쟁이다. 이집트가 전쟁에서 패하긴 했지만, 당시 소련과 미국의 영향으로 수에즈 운하를 지켜냈고,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을 완전히 상실한다. 이와 같이 수에즈 운하는 역사적으로 여러 사건들로 주목을 받아온 곳이다.
이번에는 선박 좌초 사고로 다시 한번 이목이 집중됐다.
이 사고로 이집트는 하루 158억 원의 손해를 봤고, 하루에 50여 대의 선박이 이곳을 통과하는데 대기 중인 배들도 피해를 많이 봤다. 이들은 배의 소유주인 일본 ‘쇼에이기센’이나, 이 배를 장기 용선하는 대만 해운 업체 '에버그린' 측에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이 되는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 같다. 보험을 야무지게 잘 들어 놨어야 할 텐데 말이다.
손해의 종류는 다양하다. 납기일을 놓친 해운업계도 있고, 부품을 제때 받지 못해서 생산 차질을 빚는 곳도 있다. 수천 마리의 동물이 배에 갇혀 폐사 위기에 처한 특이 경우도 있다. 중동 국가들은 이슬람식 도축 방식을 적용한 할랄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유럽에서 키운 동물을 살아있는 채로 선박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이동 시간만큼만 준비하다 보니, 10여 일이란 시간을 갇혀 있게 되면 배에 실린 동물들에 문제가 발생한다.
선박 좌초 사고로 해운·조선 주가는 널뛰기
또 이번 좌초 사고로 우리나라의 일부 몇몇 주식 종목들이 널뛰기도 했다. 선박 좌초 초기에는 통행 불가 사태로 해운 운임이 인상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해운주 주가의 상승이 있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도리어 악재가 됐다. 이유는 선박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운항할 때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게 되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보다 거리와 시간이 길어지면서 선박유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 반면 조선주들은 사고 선박이 일본 조선업계 1위인 이마바리 조선소에서 건조됐다는 점 때문에 한국 조선사들이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전망으로 오르기도 했다.
수에즈 운하가 우리의 주식시장도 흔드는 것을 보니 세상이 생각만큼 넓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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