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이민 온 76세 바이올리니스트 할머니
맨해튼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문화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어릴 적부터 무료로 음악 교육을 받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도 졸업했고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와 헨릭 셰링을 존경하고 사랑한 할머니(76세)를 만나 기뻤다.
28년 전 뉴욕에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할머니 아버지는 세계 2차 대전 때 사망하셔 러시아에서 아주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셨다. 1991년 전후로 러시아 사정이 달라졌고 1991년 전 러시아는 국민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옷을 나눠 주었는데 그 후 러시아 정책이 변해 스스로 돈을 벌어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음악 공부할 때 심리학 과목도 들어서 뉴욕에 와서 장애인 학교에서 특별한 시험을 보지 않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음악 교육 학위증만 보여주고 브루클린 장애인 학교에서 16년 동안 일하며 지내다 지금은 은퇴하고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92nd Y 오케스트라에 가입해 활동하고 개인 레슨을 하며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홀로 살고 있다고. 엄마랑 함께 뉴욕에 이민 왔는데 엄마는 이미 돌아가시고 아들은 51세. 한때 아들이 메트 오케스트라에 가입해 단원으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였으나 지금은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나이는 51세.
장애인 학교에서 근무할 적 영어에 능통하지 않아 5년 정도 아주 힘들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장애인 교육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했고 지금도 레슨 하는 사람 가운데 ADD 장애인들이 있고 할머니 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분은 52세. 과거 70대 할아버지가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 레슨 했으나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말씀하셨다.
가끔 카네기 홀에 공연을 보러 가고. 제자랑 비발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다고 하며 내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92nd Y는 뉴욕의 역사 깊은 유대인 단체다. 오래전 그곳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본 적이 있고 지휘자가 일본인이고 단원들이 나이 든 분들이 많아서 인상 깊었는데 그분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신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92nd Y에서 일본인 지휘자가 활동하고 피아노 연주도 하고 재정 분야에서 일했다고 하며 뉴욕에 놀라운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이 많다는 말.
뉴욕으로 이민을 오니 러시아 시민권을 상실하게 되어서 비자 문제 등 복잡하니 자주 러시아에 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고 7년 전이 마지막 여행이었고 이제 차츰 러시아 언어도 잊혀 간다고. 모스크바는 이민자들이 많아서 뉴욕과 비슷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보스턴과 비슷한 분위기고 인구는 약 500만 정도라고.
내게 일본어로 "고맙습니다"를 어떻게 말하는지 물으셨고 일본인과 중국인과 한국인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물었지만 나 역시 요즘 구분하기 힘들다고 했다. 20년 전 일본인과 한국인 등 구분이 더 쉬웠으나 요즘 갈수록 구분하기 어렵다.
할머니는 자주 센트럴파크에 산책을 하러 가신다고 하셨다. 고목나무에 큰 구멍이 있는데 그게 바로 청설모가 사는 집이라고 하며 고목나무에 두 개의 구멍이 있으면 "무료 2 베드 룸 콘도"라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뉴욕에 무료 콘도가 어디 있니.
76세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너무 고와서 왜 그리 고운지 물었더니 유전이라고 하며 웃었다. 어린 시절 극도로 가난하게 지냈으나 바이올린을 배워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했고 뉴욕에 이민 와서 행복하게 사시는 분. 바이올린이 그 할머니 인생에서는 너무 특별할 거 같다. 어릴 적 러시아에서 너무너무 가난하게 살았고 음식을 받기 위해 오래오래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하니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작품 "피아니스트"가 생각이 났고 Kayla 할머니 인생도 영화 같았다. 76세 할머니가 아직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바이올린 레슨을 하며 사는 것도 역시 놀랍기만 하다.
사진 왼쪽 Kaila 할머니, 삼성폰에 든 할아버지는 제자, 오른쪽 사진도 제자가 바이올린 연습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