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계 미국인 멋쟁이 교수님

by 김지수

맨해튼 음대에서 로버트 만 챔버 뮤직 마스터 클래스 감상하고 있는데 롱아일랜드 가든 시티에서 전화가 걸려와 문득 대학원 시절 만난 경제학 교수님이 떠올랐어. 그 교수님이 가든 시티에 살고 계셔서. 영화배우처럼 멋진 외모의 경제학 교수님. 영어 억양은 너무 강해 알아듣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억양에 노출하지 않고 미국에 오면 악센트 강하면 영어가 잘 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는 억양이 없어서 억양이 없는 내 발음은 아시아인을 잘 만나지 않은 분은 아주 낯설어하는 듯. 물론 내 영어 발음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어. 처음 영어 배울 적 제대로 배워야 했는데 콩글리시 영어 발음을 배우고 나서 나중 미국 박사 학위가 있는 미국 수녀님 영어 발음 들으니 그게 이상해 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내 평생 가장 후회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영어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친 거.


입시생 어린 두 자녀랑 함께 공부하는 입장이니 당시 난 주말 수업을 들었고 매주말 연강 수업을 들었다. 악센트 강한 경제학 교수님의 강의를 3-4시간 앉아서 들으면 땀이 줄줄 흘렀지. 그래도 경제학이니 아주 어렵지도 않았어. 첫 학기 뉴욕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강의실도 얼마나 춥던지 경제학 교수님도 너무너무 춥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오픈 테스트를 한다고 하니 신이 났다. 첫 경제학 시험은 오픈 테스트라서 긴장감이 약간 줄었다. 물론 오픈 테스트라 할지라도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지 않은 내게는 무한 도전이다. 교수님은 10년 만에 오픈 테스트를 한다고. 그 이유는 너무 추운 강의실에서 강의 듣느라 혼이 나서 시험이라도 부담이 작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국 학생들은 대개 일하고 주말에 수업을 받으니 항상 바쁘고 힘들다. 외국인 학생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풀타임 일을 안 해도 미국인 학생들보다 천 배 이상 더 힘들다고 하지. 영어 잘하는 소수 예외도 있다.


첫 시험 보러 가니 강의실 앞에 서 계신 교수님이 내게 "준비됐어요?"라고 물었다. 뭐가 준비되긴 됐어. 너무너무 어려운 수업인데. 최선을 다해서 시험 보는 게 나의 의무이지.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어. 정말 눈물 나는 수업이었어.


암튼 그 무렵 경제학 수업 시간에 한국 경제가 좋다는 것을 들었고 한국 현대 자동차 등에 대해 언급하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고 백인 거주 지역을 찾다 보니 롱아일랜드 딕스 힐(Dix Hills)에 집을 구했는데 경제학 교수님이 딕스 힐 세금이 롱아일랜드에서 가장 높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 백인 거주 지역이 반드시 좋다는 것도 아닌 것을 알고 딕스 힐에서 제리코(Jericho)로 이사를 했다. 뭐든 장단점이 있다.


하얀 눈이 내릴 적 롱아일랜드 495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얼마나 힘들던지. 그런다고 비싼 택시를 탈 수도 없고 내 작은 소형차를 몰고 꽁꽁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마치 스키 타는 것 같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뉴욕에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펑펑 눈이 오면 그림보다 더 예쁘지만 고속도로 운전하기는 겁이 났다. 그래도 참고 운전을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때 깨달았다. 날씨가 안 좋으니 미국은 좋은 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차가 사치품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이었다. 한국에서 너무 비싼 승용차는 눈에 띄어 결코 좋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뉴욕의 우리 집 형편에 비싼 차 구입도 어렵고 집과 학교만 운전하고 장 보러 가기 위해 차가 필요하니 고급 승용차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란 것은 착각이었다. 형편이 된다면 뉴욕은 좋은 차를 구입하면 좋다.


연세든 경제학 교수님은 어릴 적 아일랜드에서 이민 오셨다고 들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의상에 신경을 쓰는 문화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 의상 코디 감각이 영화배우 의상보다 더 높은 수준. 매주말 연강을 하니 너무 피곤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보드카를 마신다고 하셨다. 교수님 부인이 돌아가시고 따님은 런던과 뉴욕을 왕래하면서 일을 한다고. 언젠가 내게 롱아일랜드 가든 시티에 있는 교수님 집에 초대했는데 난 가지 않았다. 와인과 장미꽃 다발과 양초를 들고 찾아가도 좋았을 텐데. 뉴욕에서 만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정말 멋쟁이다. 그 교수님은 NYU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경제학 수업 시간에 미국 문제에 대해 숙제를 내주셨는데 내가 고른 문제가 미국 의료 문제. 여러 문제 가운데 하나를 골라 에세이를 작성하는 문제였는데 문제 많은 미국 의료 정책을 어찌 해결하면 좋은가에 대해 난 미국에 국가 지원 의대를 많이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는 혜택을 주고, 국비 병원을 세우고, 국비 지원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국비 병원에서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저렴한 의료 정책을 추진하면 좋겠다고 작성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자본주의 체제와 거리가 먼 사회주의 정책이었어. 경제학 교수님은 내가 제출한 숙제 보고 웃으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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