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9.11(18주년)/ 삶이 삶이 아냐

by 김지수

9. 11 수요일


9.11 뉴욕 테러 18주년을 맞는 아침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을 보려고 새벽 시간에 알람을 맞춰 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났지만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다시 잠들다 한 시간 후 의식이 돌아와 약간 망설이다 샤워만 하고 아파트 문을 잠그고 시내버스 정류장에 갔다. 예정 시간보다 늦어져 식사 준비는 하지 못했다. 버스 정류장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시내버스가 우릴 보고도 그냥 달렸다. 옆에서 기다리던 중국인 여자가 미친 버스라고 악을 썼다. 가끔 시내버스 기사는 멈추지도 않고 달린다.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은 아침 8:15-46분 사이. 링컨 센터 부근에 살면 얼마나 좋아. 플러싱에서 아침 시간에 링컨 센터에 도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몇 차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고 가야 하고 출근 시간 말할 것도 없이 지옥 버스와 지옥철을 타야 한다. 그럼에도 1년에 딱 한 번 열리는 특별 행사니 보러 가려고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몸 컨디션이 안 좋아 안 가려다 밖으로 나왔는데 버스 기사님의 횡포에 슬픈 아침. 할 수 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플러싱에 도착, 지옥철에 탑승해 타임 스퀘어 역에 도착, 1호선에 환승해 링컨 센터 역에 내려 달려갔다. 링컨 스퀘어 화단에 핀 장미꽃과 무궁화 꽃도 보면서 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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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센터에서 열린 9. 11 특별 이벤트




이미 공연은 시작했고 군중들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뉴욕 필하모닉 공연이 열리는 데이비드 게 펜홀과 뉴욕 시립 발레 공연이 열리는 David H Koch Theater 2층에도 올라가 구경을 하고 다들 어찌 그곳에 올라갔는지 궁금도 했다. 북소리 울려 퍼지는 링컨 센터에서 하얀색 의상을 입은 댄서들이 음악에 맞춰 맨발로 춤을 추었다. 9.11 테러 유가족들도 찾아와 공연을 보았을까.


잊을 수 없는 9.11 테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가. 가족들의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8주년을 맞는 9.11 테러. 약 3천 명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때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태어난 아이는 18세가 된다. 아빠 얼굴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얼마나 슬플까. 그날 무역센터에 출근해야 하는데 배가 아파서 늦게 일어나 출근하려고 보니 빌딩이 불타오르고 있었다고. 하늘이 도와준 특별한 사람도 있다. 운명이 뭘까.


가끔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았냐고 묻는다. 9.11 테러가 일어났던 2001년 난 뉴욕에 살지도 않았다. 그때 난 한국에서 어린 두 자녀 교육을 하느라 무척 바빴다. 하루 24시간이 1초처럼 휙휙 달려갔다. 1주일에 한 번 받는 레슨 준비가 왜 그리 힘들던지. 두 자녀와 나 모두 힘겨웠다.


링컨 센터에서 특별 이벤트를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맨해튼에 가는 것. 그런데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서 포기하려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나 맨해튼에 가니 미처 식사 준비를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갔다.


카네기 홀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고 7호선 74 브로드웨이 역에서 환승해 플러싱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20분 이상 기다렸다. 몇 차례 환승하니 바로 연결이 되면 시간이 절약되고 아닌 경우는 교통 시간이 많이 든다.


마침내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아들이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물 없이 어찌 살라고. 예고도 없이. 식사 준비를 물 없이 어찌해. 아침 일찍 링컨 센터에 가느라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스타벅스에서 레귤러커피 사 먹으려다 그냥 집에 돌아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순간 아파트 슈퍼에게 전화를 했다. 왜 집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래층 할아버지네 집 공사를 하니 우리 집에서 물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그럼 미리 말을 해야지.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거실 창문을 여는 순간 아래층 할아버지가 날 불러 공사를 한다고 말했다. 역사 깊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보수 공사도 해야 하고 그걸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리 연락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할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한다.


새벽부터 멍한 상태로 링컨 센터에 다녀왔는데 물이 안 나오니 대소동이지. 식사 준비하려고 집에 돌아왔는데 왜 물이 안 나오는 거야.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니 손도 씻어야 하는데 물이 없어서 손을 씻을 수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베이글을 구워 먹는 것. 아들에게 베이글을 구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필라델피아 치즈를 발라 베이글을 먹고 허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단순 노동이 최고다. 아파트 지하에 세탁을 하러 갔다. 빨래 가방 3개를 들고 세제를 들고 지하에 가서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고 집에 돌아왔다. 빨래를 하면 기분도 좋다.


아래층 할아버지 집 공사가 끝난 후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끓였다. 고춧가루와 두부와 파도 듬뿍 넣어서 먹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찌게류가 좋다.


종일 상당히 힘든 하루를 보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대서양 아래로 잠수를 했다. 세상이 캄캄했다. 추석인 것도 잊어버렸는데 잠들려고 창가 문을 닫으려 하니 밤하늘에 보름달이 보였다. 그렇구나. 추석이야.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런저런 소식을 듣는데 뉴욕의 추석은 인적 없는 산골 사찰처럼 조용하다. 마트에 가서 송편이라도 사 먹을까. 어릴 적 엄마랑 함께 송편을 빚곤 했다. 멀리서 찾아뵙지 못하니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삶은 왜 뜻대로 되지 않은 걸까.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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