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화요일
모처럼 첼시 갤러리에 방문했다. 첼시는 컨템퍼러리 아트 메카다. 약 300여 개가 넘는 갤러리가 있고 메트, 모마, 구겐하임 뮤지엄처럼 항상 북적북적하지 않아서 좋다.
세계 미술계를 움직이는 3대 갤러리에 속하는 첼시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파울 클레의 특별전이 열린다고 하니 기대를 하고 갔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속담처럼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갤러리와 달리 방문객들이 꽤 많아 역시 명성 높은 곳은 다름을 느꼈다.
수년 전 메트 브로이어에서 파울 클레 특별전이 열렸다. 그때 좀 더 자세히 볼 걸 후회도 된다. 기회는 항상 오지 않는다. 좋은 전시회는 여러 번 봐도 좋다. 다시 클레전을 보러 가야지 하다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오랜만에 첼시에 갔으니 몇몇 갤러리 전시회도 보았다. 낯선 예술가의 작품이 주는 환상적인 세계에 퐁당 빠지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았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어디서 나올까. 백합 향기 가득한 갤러리에서 음악이 흐르니 행복한 오후였다. 피곤함도 음악과 꽃향기에 사라져 갔다.
화폭에 담은 붉은색 추상화 그림을 보면서 가을 단풍을 연상했다. 가을이면 단풍 구경 가려고 가슴이 설레었지.
노란 벽에 전시된 작품은 데이비드 호크니를 연상하게 했다. 동시 노란색 벽이라 고흐의 노란 방도 떠올랐다. 빈센트 반 고흐는 파리에서 실패하니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로 떠나서 노란 집을 빌려 생활했다고. 창 하나 있는 고흐의 노란 방에는 침대 하나와 의자 두 개와 테이블 한 개가 있고 벽에 액자 몇 개가 걸려있다. 가난하던 예술가는 죽은 지 100년이 지나 천재 화가로 알려졌다. 그가 생존 시 인정받았더라면 더 많은 작품을 완성했을 텐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수년 전 시카고 미술관에서 '고흐 노란방' 전시회를 앞두고 미술관 인근에 고흐 노란방을 그대로 재현해 일반에게 대여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고흐의 노란방에 머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요즘 세상은 과거보다 더 풍족함에도 만족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수입은 쥐꼬리만 한데 명품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한국에는 TV와 냉장고도 없는 집이 많았다. 88 올림픽 후 많은 변화가 찾아오고 사람들 소비는 늘어나고 IMF도 터져 갑자기 해고되니 뉴욕에 온 사람도 많다는 말을 가끔 듣곤 했다.
첼시는 아트 갤러리가 밀집한 곳이지만 여행객이 사랑하는 장소다. 여행객은 첼시 마켓에 가서 랍스터를 사 먹는다고. 첼시 마켓 맞은편에는 구글 본사가 있다. 첼시 하이 라인도 뉴욕 명소로 자리 잡아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7호선 종점 허드슨 야드에는 쇼핑 몰이 오픈해 명품 매장 가득하고 맛집도 있어서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져간다. 허드슨 야드에 있는 벌집 모양 건축 베슬(Vessel) 앞에서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도 많다. 딸이 보스턴에서 뉴욕에 올 때 우리가 자주 만나던 허드슨 야드. 함께 블루 바틀에 가서 아보카도와 카푸치노 커피를 사 먹었는데 이젠 추억으로 변했구나.
첼시 갤러리는 교통편이 불편했는데 7호선 종점 허드슨 야드 지하철역을 개통하니 더 편리해졌다. 종점역에서 내려 하이 라인에서 걷다 첼시 갤러리에 가면 좋다. 7호선 허드슨 야드 지하철역 개통하기 전에는 주로 1호선과 익스프레스 E 호선을 이용했고 지하철역에서 내려 허드슨 강이 있는 서쪽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뉴욕 첫 방문자에게는 지하철역과 약간 떨어져 있으니 약간의 불편함이 있겠지.
지하철역에서 내려 첼시 갤러리에 가는 동안 보라색 국화꽃과 무궁화 꽃도 보아 반가웠다. 국화꽃 하면 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옆에서> 시도 떠오른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시.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생의 꽃이 피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 태어나 대학 교육을 마치기까지 수 십 년의 세월이 걸린다. 그냥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학교 교육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어릴 적 환경도 아주 중요하다.
첼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보다 계단을 올라가 하이 라인에서 걷다 7호선 종점역 허드슨 야드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플러싱에서 첼시 갤러리에 가려는데 시내버스를 오래 기다리다 포기하고 터벅터벅 걷다 채송화꽃과 장미꽃도 보며 행복했다. 채송화꽃은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하니 정겹다. 여름에 피는 장미꽃이 9월에도 향기가 좋아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장미꽃의 향기도 제각각. 사람의 향기가 다르듯 꽃향기도 다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