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월요일 아침
가을바람 불고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공원에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러 갔다. 우리의 목표는 2마일 뛰기. 힘들면 걷고 다시 뛰기를 반복한다. 고등학생 시절 800미터 달리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양호하지만 쉬지 않고 2마일(약 3200미터)을 뛰기는 상당히 벅차다.
며칠 전 유에스 오픈 테니스가 막이 내리고 남자 싱글 결승전은 5시간 가까이 걸렸다. 평소 나달은 몇 시간 정도 운동을 할까 궁금했다. 11월 첫 번째 일요일은 뉴욕 마라톤 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마라톤 축제에 참가하는 숫자도 늘고 26마일을 달리려면 매일 어느 정도 운동을 해야 할까.
빈부 차이도 큰 세상이지만 개인 능력 차이도 정말 큰 세상이다. 26마일 마라톤 완주가 어디 쉬운가. 하루 2마일 달리기도 끙끙거리는데 26마일을 어떻게 뛴담.
월요일 아침 글쓰기를 하고 아들과 운동을 하고 숲 속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맨해튼에 갔다. 태양이 활활 불타오르는 여름날은 떠나고 가을 해가 비추다 금세 사라지는 가을날. 아지트에서 핫 커피 한 잔 마시며 휴식을 하다 밖으로 나와 걷는데 이상한 전화가 두 번이나 걸려왔다. 낯선 전화번호라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았는데 역시나 광고 전화였다. 자동차 워런티에 대해 말하니 웃고 말았어. 10살 된 소형차도 팔고 없는데 무슨 자동차 워런티란 말인가. 뉴욕에 와서 자동차 사고도 나고, 뺑소니 사고도 당하고, 차 하면 기분 좋은 기억은 없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는 차 없이 지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구입했지.
가을이라 오랜만에 미드타운 갤러리에 방문했는데 빌딩 입구에서 갤러리 보고 싶다고 하니 직원이 웃으며 문이 닫혔다고 하니 또 얼마나 쓸쓸하던지. 갤러리 웹사이트에 문을 닫는다는 말이 없어서 갔는데 허탕을 치고 말았다. 전시회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려고 했는데. 날마다 소란한 세상 뉴스를 읽으니 지구를 떠나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멀리 이탈리아 피렌체에 사는 L은 아름다운 엘바섬에 휴가를 다녀왔다고 사진을 올렸는데 얼마나 환상적인 바다인지 숨이 막혔다. 푸른 바다를 사랑하는 난 바다만 보면 미친다. 사랑하는 바다에 가고 싶었는데 인어 공주 퍼레이드 열릴 때 코니 아일랜드에 간 거 말고 바다에 가지도 못한 채 여름이 떠나고 말았다. 나폴레옹이 유배 갔던 엘바 섬도 무척 아름다웠다. 사진을 봐도 예쁜데 바다 풍광은 얼마나 매력 넘칠까. L은 엘바섬 친구네 별장에 초대받아서 휴가를 갔다고. 가끔은 휴가도 가야 하는데 삶은 복잡하고 세월만 흐르고 있다.
미드타운 플라자 호텔 옆 The Paris Theater에 이탈리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영화 포스터가 보였는데 최근 극장 문을 닫았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8월 초 딸이 뉴욕에 올 때 플라자 호텔 근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전 함께 파바로티 영화를 볼까 하다 가지 않았는데 아쉽기만 하다. 극장 운영도 점점 어려워져 가나.
파바로티는 어린 시절 빵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이 음악을 사랑해서 자주 레코드로 음악을 들었고 어느 날 그가 부른 노래를 듣고 지나가던 음악가가 파바로티가 음악을 전공하면 좋겠다고 하니 부모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음악을 시키냐고 했는데 장학금을 받아 할 수 있다고 권유를 했다고. 가난 가난했던 파바로티는 훗날 세계적인 테너 가수가 되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키워가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수 십 년 전 파바로티 자서전을 읽었는데 참 감동적이었다.
20세기의 전설 파바로티가 1993년 6월 26일 센트럴파크에서도 무료 공연을 하니 50만 가까운 관객이 모였다고.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뉴욕에 왔더라면 뉴욕 메트에서도 활동했던 그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을 텐데 뉴욕에 늦게 오고 말았어. 뉴욕이 뭔지 관심 조차 없고 어릴 적부터 외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꿈과 현실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꿈을 이룬 사람은 없을 거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할까.
플라자 호텔을 지나 5번가를 거닐기 시작했다. 럭셔리 매장 가득한 5번가에는 늘 여행객들로 붐비고 멋진 정장을 입은 샐러리맨들도 지나친다. 또, 가짜 명품 핸드백을 파는 보따리 장사꾼도 많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촬영한 뉴욕 Tiffany & Co. 에서는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를 먹을 수 있다고 하고 난 아직 구경도 못했다. 루이뷔통, 프라다, 구찌 등 명품 가득한 매장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얼마나 화려하게 변신을 할까.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을 꼭 붙잡을 거야. 캐럴송이 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매장을 보며 쇼핑을 하는 돈 많은 여행객들도 많은 5번가.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이뤄졌나. 그 화려한 5번가에 슬픈 홈리스들이 넘친다. 불구가 된 장애인이 도와달라고 깡통을 흔들면 가슴이 아프다. 그뿐 만이 아니다. 갈수록 노인들 홈리스도 많아져간다. 할머니 홈리스도 보았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는 주름살 많은 할머니. 가족이 없고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할머니 홈리스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힘든 세상 부부 함께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삶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고독하고 쓸쓸한 길을 걷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5번가를 걷다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도 들었다. 성 패트릭 성당을 지날 무렵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렸다. 아름다운 종소리가 "걱정 말아요. 괜찮아요."라고 착각도 하며 웃었다. 착각이 아니라도 좋다. 아름다운 종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걷다 걷다 브라이언트 파크에 도착했다.
월요일 저녁 공원에서 오페라 공연이 열렸다. 한국 테너 가수도 무대에 올랐다. 처음 보는 낯선 테너 Won Whi Choi.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와 푸치니 <나비 부인> 아리아도 들려왔다.
나비 부인 게이샤와 미국 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뉴욕에서도 인기 많은 오페라인데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했을 때 상연 금지했다는 것을 우연히 책을 읽다 발견했다. 별빛처럼 아름다운 오페라 아리아를 들을 수 있는 가을이 찾아왔다. 메트 오페라도 곧 개막하니 팬들은 가슴이 설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