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토요일
주말 '제37회 미국 동부 추석 대잔치'가 뉴욕 퀸즈 식물원에서 열린다. 지난번 한인 마트에 장 보러 갔다 벽에 붙여진 추석 대잔치 홍보 포스터를 보았다. 전날과 다르게 토요일 눈부신 가을 햇살이 비춘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식물원에 추석 대잔치 구경을 하러 갔다.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플러싱 메인스트리트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걷기도 힘들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가을 햇살 아래 걷다 식물원 안으로 들어가 참나무 가로수길을 걸었다. 장미꽃도 연보랏빛 꽃도 가득 핀 정원을 걸으며 파란 하늘 보는 것으로 행복이 밀려왔다. 식물원 입구에서는 콜택시 3불 할인 쿠폰을 나눠주었다. 식물원 곳곳에 한글로 적힌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축제의 현장에 도착해 꽤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곱디 고운 한복을 입고 장구, 징, 북을 치는 한인 사람들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것인가. 눈과 귀가 호강한 특별한 잔치라 기쁘기만 했다. 전라북도 농산물 등 다양한 한국 식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또 '뉴욕 가정상담소 부스'와 '뉴욕 한인 노인 상조회 부스'가 보였다. 장례식 준비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리 돈을 모은다는 '뉴욕 한인 노인 상조회'. 그날그날 살기도 벅찬데 언제 죽을지 모르니 미리 장례식 기금을 모아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나.
추석은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한국 고유 명절. 한국에서는 아주 큰 명절이나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로는 힘든 이민 생활에 먹고사는 것도 바쁘고 친척들이 뉴욕에 사는 것도 아니니 한국과 달라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수 십 년 전 이민 온 택시 기사들도 '그냥 살아요.'라고 말한 분이 아주 많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은 그런대로 더 좋아서 비즈니스를 했지만 지금은 개인 비즈니스 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라고. 갈수록 서민들 삶은 팍팍하고 힘들다는 말이 들려온다. 한인 마트에 장 보러 가서 물가가 올라가면 설날이나 추석이 다가옴을 느낀다. 어릴 적 집에서 송편도 만들었지만 뉴욕에서는 아주 가끔 송편을 사 먹기도 한다.
퀸즈 식물원 가는 길 초등학교 시절 보던 엿을 판매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난하고 가난하던 시절 빈 병이나 고물을 들고 가 엿을 사 먹을 수 있던 시절. 그때는 빵집도 없고 먹을 게 귀하던 시절이니 엿이 최고 간식이었나. 초등학교 시절 고무신을 신고 다닌 학생들도 많았다. 운동화 한 켤레가 1500원 정도였나. 가끔 담임 선생님을 돕고 늦게 집에 가려고 하면 운동화를 잃어버리고 맨발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물론 엄마에게 혼이 났다. 신발을 곁에 두고 일을 해야지 왜 잃어버리고 오냐고. 그 시절은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곤 했고 소풍을 가도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으니 얼마나 가난했던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코스모스씨를 뿌리러 가곤 했다.
지금은 세계 경제대국 11위에 속하는 한국.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고 한국 빈부 차이가 크다고 하나 지금 한국만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미국 등 전 세계 빈부 차이가 아주 크다. 뉴욕에 와서 느낀 빈부 차이는 한국에서 본 적도 없으니 충격이 더 크다.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 거주할 때 고등학생들은 벤쯔와 BMW를 타고 다닌 학생들이 아주 많고 고급 브랜드 의상을 입고 명품백을 들고 명품 화장품을 사용하고 등. 자주자주 파티를 열고 친구들끼리 해외여행을 가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두면 가난한 집 학생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뉴욕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요트와 고급 승용차 3대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부자들은 추운 겨울이면 플로리다주로 옮겨 몇 달 살다 뉴욕에 돌아온다. 영화에 나올 듯한 성 같은 집에서 사는 부자들과 가난한 이민자들 삶은 극과 극으로 대조된다. 상류층 역시 자녀 교육에도 열성적이다. 부잣집 자녀들은 고액 개인지도를 받으니 비단 한국만 교육에 열성적인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을 창시한 마크 저크버그도 고액 개인지도를 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미국은 지역마다 큰 차가 있고 뉴욕과 미국 시골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이다.
가을 햇살 눈부신 토요일 거버너스 아일랜드에서 음악 축제가 열렸지만 동부 추석 대잔치 구경하느라 가지 못하고 맨해튼 미드타운 북 카페에 오랜만에 찾아가서 공룡 바리스타 만나 인사하고 핫 커피 마시고 책을 폈는데 읽히지도 않았다.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지 아니면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런지. 책도 마음이 딴 곳에 있으면 읽히지가 않는다.
집중이 되지 않아서 서점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갔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 로어 이스트 사이드. 과거 텅텅 빈 소호에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가촌이 되었는데 소호가 상업적인 동네로 변하자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첼시로 옮겨갔는데 지금은 첼시 렌트비도 비싸서 갤러리 운영이 어렵고 힘들다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는 첼시 보다 렌트비가 더 저렴하다고.
낯선 거리거리 걸으며 가난한 이민자들이 어떻게 힘든 이민 생활을 견디며 살았을까 상상도 했다. 19세기 로어 이스트 사이드는 이탈리아인, 유대인, 아일랜드인이 이민을 와서 살던 지역이다. 가난한 그들이 좁은 공간에서 살던 흔적을 그대로 담아 뮤지엄을 세웠다. 103 Orchard Street에 있는 Tenement Museum. 이민자들 삶에 관심 많은 분들이 찾는 뉴욕 명소다.
백 년 전에도 이민자들 삶은 힘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니 빈부 차이는 언제 사라질까. 로어 이스트 사이드도 커피숍과 바가 많이 생겨서 생기가 감도는 지역으로 변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바에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