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소호 갤러리
9월 5일 목요일
세상은 소란하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가 뒤섞여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음표와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도돌이표의 반복. 진실은 뭘까. 어디가 끝일까.
US Open 테니스 경기를 보느라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트랙 경기장에 가서 2마일을 뛰었다. 눈부신 파란 하늘 보면서 벽을 타고 오르는 분홍색 나팔꽃을 보면서 멀리서 테니스 치는 것을 보면서 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뛰었다. 목요일 아침 매미 소리도 들었다.
숲 속 고목나무 구멍이 패인 곳에서 청설모가 보여 동화책 같았다. 카네기 홀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할머니는 동물들은 좋겠다고 하면서 센트럴파크 고목나무 구멍은 렌트비도 내지 않고 산다고 하니 웃었다. 뉴욕 시민들에게 렌트비는 그만큼 부담이 되나 보다. 오죽하면 고목나무 구멍을 집과 비교했을까. 성페테르스브루그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할머니는 가난을 피해 뉴욕에 와서 특별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레슨도 하고 어퍼 이스트 사이드 92nd Street Y에서도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미드타운 아지트에 가서 핫 커피를 마시며 책을 폈다. 오래전 읽기 시작했는데 절반도 채 읽지 않았다. 한 번 읽는다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집에서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변명도 한다. 식사 준비 등 간단한 집안 일도 하고 매일 글쓰기 하고 운동을 하는 등 잡다한 일로 시간이 금세 흘러가버린다. 책의 내용이 연애 스토리처럼 머릿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 후 지난번에 만난 코미디언이 식사를 하러 오셨다.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하지 않고 레스토랑이나 마트에서 사 먹는 것으로 보인다.
거리에서 노란 바나나 1불어치 사고 지하철을 타고 소호에 갔다. 여행객이 사랑하는 소호 거리에서 그림과 장식품을 파는 상인들도 많았다. 전에도 만난 사진가도 보았다. 몇몇 갤러리에 가서 전시회도 보았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 전시회를 보러 가면 좋다. 갤러리는 언제나 무료이니 얼마나 좋아. 작가들이 화폭에 담은 세상 풍경도 보고 화폭에 담은 고통스러운 느낌이 묻은 그림도 보았다. 세상은 고통스럽나.
저녁 6시에 리셉션이 열린다고 하나 오랜만에 소호 드로잉 센터에 갈 예정이라서 난 발길을 돌렸다. 매주 목요일 저녁 6시부터 무료입장하니 가끔 들려 본다.
한국에서 드로잉 전시회를 본 기억은 없다. 뉴욕에는 드로잉 전문 갤러리가 있으니 놀랍다. 여러 명의 작가들 작품의 전시회였다. 이름도 모르는 한국 작가 작품도 보았다. 지하로 내려갔는데 그녀의 영상을 보고도 저건 한국 출신 작가 작품이야라고 속으로 짐작했다. 한국적인 느낌을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동시대 작가들 작품 전시회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가 안만큼 전시회도 보일 것이다.
드로잉 센터를 떠나 New Museum에 갔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기부금을 주고 입장하는 뮤지엄.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회로 명성 높고 가끔은 특별 전시회가 아주 맘에 드는 곳.
드로잉 센터에서 나와 뉴 뮤지엄에 가는 길 모델처럼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자를 보았다. 어쩌면 모델인가 모르겠다. 모델은 타고난 것인가. 가꾸는 것일까. 그녀는 무얼 먹고사는 걸까.
9월 5일부터 13일까지 뉴욕에서 패션 위크 행사가 열린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모델들이 뉴욕에 찾아오겠다. 200-1200불 하는 티켓도 팔고 어쩌면 무료 이벤트도 열릴지 모르나 한 번도 구경하지 않았다. 패션잡지에 등장하는 고혹적인 몸매를 가진 모델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을 텐데. 더 여유롭고 풍족하다면 패션 위크 축제도 찾아갈지 모르겠다. 명품 브랜드 가격을 보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다.
모처럼 소호 지하철역에 내렸을 때 날 반긴 사함은 다름 아닌 홈리스 두 명이었다. 도로 바닥에 두 사람이 꼭 껴안고 누워있었다. 홈리스랑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다. 맨해튼에 가면 점점 더 많은 홈리스들과 눈이 마주친다. 가까이 다가와서 돈을 달라고 요구도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 인간의 품위를 지킬 정도로, 가끔은 멋진 곳으로 휴가를 떠날 정도로 살면 좋을 텐데 당장 렌트비를 지불할 돈도 없어 거리로 내쫓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매일 공연과 축제가 열리는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이지만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날마다 벼랑 끝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사람들도 많다. 어둠 속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아서 슬픈 도시. 매일 눈을 뜨면 눈부신 여명의 빛이 세상을 비추지만 현실이 칠흑처럼 어두울 때는 아름다운 자연의 빛도 느낄 수 없다.
세상 어디나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오죽하면 태어나 정든 나라를 떠나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타국 살이는 고국보다 훨씬 더 힘들다. 고국에서 타향살이도 고독하고 쓸쓸하고 어렵다고 한다. 그럼 타국은 어떠하겠는가. 언어도 소통이 안되어 고독에 파묻힌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미국 내 한인 이민자들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고독이라고 말한다고. 아래 기사를 읽으면 조금 이해가 될까.
뉴 뮤지엄에 가는 길 오랜만에 하우징 웍스 북카페에도 갔다. 저녁에 특별 이벤트가 열리는 눈치였다. 헌책을 살펴보다 인상된 가격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책 가격이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구나. 전에는 1-2 불하는 책도 꽤 많았는데 찾기 힘들었다. 중고책 가격이 10불이라면 결코 저렴하지 않다. 기부받은 책들을 팔아서 홈리스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하는데 갈수록 홈리스들이 늘어나니 책값이 인상되었을까.
드디어 목적지 뉴 뮤지엄에 도착했다. 7시 되기 전이었는데 직원이 기부금을 내고 입장할 수 있다고 하니 안으로 들어 가방을 맡기고 기부금을 내고 입장권을 받았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전시회를 보는 중 L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전시회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뮤지엄에서 메시지를 받고 얼른 밖으로 나와 통화를 했다.
2층에서 본 작품 가운데 기억나는 특별한 작품. 야외용 버너 위 프라이팬이 달궈지고 있었다. 옆에는 연보랏빛 조명이 비추고. 그걸 보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생각했다. 끝도 끝도 없는 경쟁을 통과해야만 하나의 목표를 완성하지만 그런다고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과거와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수 십 년 전 대학만 졸업해도 취직을 하고 혼자서 평생 가족을 먹여 살렸다. 지금은 박사 학위를 받아도 불안하다. 어느 분야든 치열하지 않은 곳이 없다.
아직도 미국은 돈만 있다면 쉽게 탑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놀란다. 미국 실정을 잘 모르니 착각도 할까. 유학도 이민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게 아니다. 개인차가 상당히 크고 한마디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도 어렵다. 그냥 편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 관문을 통과하기가 무척 어렵다. 한국만 대학 입시가 어려운 게 아니다. 미국 탑 대학과 대학원 입학만 어려운 것도 아닐 것이다. 유럽 명문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그분이 박사 지원했던 시절보다 지금 박사 지원자가 훨씬 더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